<존재와 다르게>, 에마뉘엘 레비나스
왜 저럴까?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뭐 다 먹고살려고 하는 일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더 이해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먹고살기 위해서만 사는 존재는 아니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것이 합리적인 행위라고 간주하지만 실제 사람들의 소비를 보면
다르다. 추위를 막아줄 든든한 옷보다 예쁜 옷을 산다. 형편이 어려워 라면을 먹으면서도 키우는
고양이에게 유기농 사료와 간식, 캣타워와 고급스러운 방석을 사준다. 대리 만족을 위해서다.
또 먹고사는 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보석과 시계에 오히려 더 큰돈을 쓴다. 과시욕이나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고가의 물건을 구입하는 '베블런 효과'는 경제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가격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증가하는 경향은 남들이 구입하기 어려운 값비싼 상품을 보면 오히려 사고
싶어 하는 속물근성에서 유래한다. 특정 집단에 소속되기를 원하는 욕망이 분출된 '파노 풀리 효과'도
마찬가지다. 특정 제품을 사면 그것을 소비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집단, 또는 계층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의류나 신발뿐 아니라, 스타벅스 같은 카페의 '브랜드'가 잘 팔리는 이유다.
인간은 모두 남을 의식하고 관계를 맺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노력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좀 다른 맥락에서
'타자'의 문제가 담론으로 떠오른 지 오래되었다. 나는 누구이고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는데, 타자는 또 무엇인가! '타자'는 자신 이외의 사람인데, 타인보다 훨씬 더 부정적인 뜻을
품고 있다. 바로 '소통이 안 되는 사람,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뜻한다.
"내가 전혀 예기치 못하고 전혀 나의 틀 속에 집어넣을 수 없는 사람"이다. 이런 개념은 리투아니아계 프랑스 철학자인 레비나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타자'의 문제를 통해
현대 철학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는 인간이 주체를 확립하고 주도권을 쥐려는 시도, 타인의 존재를 자기 속에 받아들이지 못한 결과를 세계 2차 대전으로 체험했다. 타자의 '고유성'을 무시하고 '윤리적 책임'을 상실함으로써 인류의 비극과 대량 학살이 일어났다고 보았다.
"자기 자신에게 전념하는 이기적인 삶, 그것은 슬픔을 달래고 죽음을 극복하기엔 충분치 않다."
레비나스는 후설의 현상학과 '존재'의 개념에 몰두한 하이데거의 영향도 있었지만, 유대교 스승인
슈 샤니 옹과의 관계에서 세계를 보는 다른 시각을 얻고 독자적인 윤리학을 세웠다. 유년기부터
<탈무드>를 가까이했던 그는 나치의 박해를 받았고 아우슈비츠에서 동생을 잃었다. 한마디로
레비나스의 철학은 '타자'라는 개념에 대한 사유라고 할 수 있다. '타자의 얼굴'은 그 무엇으로도
환원할 수 없는 절대성을 지녔다. 타자의 얼굴은 늘 놀라움과 새로움으로 다가온다. 그가 왜 좀처럼
알 수 없는 상대를 중요하게 생각했을까?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타자는 깨달음의 계기다."
그는 나라는 존재의 무게중심을 타자에게로, 타자의 미래로 옮겨야 한다고 보았다. 내 존재의 의미는
나 자신 속에 있지 않고 타자의 미래에 있기 때문에 죽음은 삶의 마지막 지평이 아니다. 부모에게
자식이 갖는 의미처럼, 자식을 통해 내 존재를 초월해 살아가는 것이다. 레비나스는 나의 것과 다른
타자의 세계에서 진정한 삶을 만날 수 있다고 보았다. 니체의 말대로 "인간이란 자기 자신을 넘어서야
할 존재"다. 자신의 오류와 한계를 고치려고 노력할 때 진정한 삶이 가능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자기 자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자기 자신만 부여잡고 있으면 타자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그냥 무시하면 되니까. 그러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가치의 기준도 사라지고 법에 정해진 절차도 밟을 필요가 없다.
무법천지가 되어 폐허만 남을까 걱정된다. 진실과 명예를 존중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을 넘어서서 타자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힘쓰고 사회적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개개인이 진정한 삶을 살려고 하면 가능성은 있다.
(레비나스는 본질의 저편까지 사유의 세계를 확장하였다. <타인의 얼굴>로 전체적인 감을 잡고
<존재에서 존재자로>, <존재와 다르게>를 읽어보는 중이다. 다시 펼쳐도 그의 책은 난해해서
이해하기 어려운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