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성이란?

사랑, 열정, 자기희생

by 명규원



'창조적 본성'의 특징은 삶에 대한 깊은
사랑이다.
열정은 숭배하는 대상 속에 자신을 넣는
자기희생의 힘이다.
창조적인 존재의 영혼에는 믿음과 추앙이
담겨있다.
예술은 객관적인 지식이 아니라 환상과 꿈을
열정적으로 끌어안는 데서 탄생한다.


-루드비히 클라게스 (철학자) -,

<무신론자의 시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예술이 우리에게 생생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뭘까? 모든 예술은 삶을

사랑하고, 찬미하는 가운데 열정적으로 만들어진다. 위대한 예술작품을 대하면서 우린 자신을 일시적으로

잃어버리는 망아(忘我)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 삶의 진실과 우리 안에 있는 기억에 다가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예술이 인간을 위로하고 구원하는 힘이 여기에 있다. 그래서 예술은 영원하고 생명력을 지닌다.

세상의 많은 문제들은 자신을 너무 의식하고 벗어나지 못해서 일어난다. 자기 자신과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하면 모두 지옥 속에 살게 된다. 불교의 깨달음, 해탈도 결국 무아(無我)에 있지 않는가?

우리 시대는 인간의 '이미지(image)'에 대한 과도한 관심에 그 특징이 있다. 이런 관심은 진실을 떠난 '망상'(delusion, 妄想)이라고 할 수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병적으로 생긴 잘못된 판단이나 확신 속에 살고 있다. 법과

절차를 무시한 채 부정을 저지르고도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정당화시키는 사회 지도층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자아도취적으로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이미 350년 전 파스칼이 경고했다. <팡세(생각)>에서 무한한 우주와 신

앞에 무릎 꿇는 겸손과 자기 성찰을 주장하고 있다. 인간이 근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인 '나르시시즘'과 '쾌락 원칙'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에서는 진실을 마주하거나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한다. 이 천년 전

예수가 십자가형에 처해져 잔인한 고통을 당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는 자신을 생각하기보다 모든 인간에 대한 사랑과 신의 뜻에 자신을 일치시키려는 믿음 속에서 자기희생을 감수했다. 그의 말과 행동은 역사적인 부활 사건과 더불어 인류에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희망을 준다. 이처럼 창조적 본성의 특징이 삶에 대한

깊은 사랑이고 그 열정으로 숭배하는 대상을 위해 자기를 희생시키는 힘이라면 예술과 신앙은 서로 통한다. 우리는 여기서 자신의 욕구 전체와 열정을 예술작품의 완성을 위해 쏟아붓는 것이 가능했던 위대한 예술가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베토벤, 도스토옙스키, 고흐, 세잔 …


오늘날은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있는 추세다. 예술의 개념도 모호해졌다. 예술은 주관적인 사건이나 감정적인 충동, 무의미(절망)나 무질서 속에서 예술가가 느끼는 어떤 것을 선별하여 하나의 형식을 갖추고 승화시킨 것이다. 현실과 꿈 사이 틈새에 웅크리고 있는 억압된 욕망을 끄집어내서 낯설게 만들기도 하고 허구를 통해 현실에 깊이 있게 접근하게 만들어 준다. 시인 예이츠는 사람의 마음속에 고동치는 거대한 기억, 혹은 특별한 기억을 깨우는 상징을 다루었다.

. "... 최선의 사람들은 신념을 잃어버리고 / 최악의 사람들은 광기 어린 강렬함으로 가득해."

그가 삶의 비극성에 대한 시의 목적이라고 본 '황홀한 긍정'은 완벽함을 추구한 결과일 것이다. 창조성이란 재능이 아니라 사랑과 열정, 자기희생에 의해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술이 인간의 진리를 전달한다면 신앙과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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