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라 웰티, <작가의 시작>
어느새 더위가 한풀 꺾였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하다. 오전에 혼자 조용한 시간을 보낼 때
누워서 읽기에 알맞은 작은 책을 고르다가 도서관에서 이 책을 만났다.
1970년대 <낙천주의자의 딸>로 퓰리처상을 받았고 여러 단편 소설 작가로 오헨리 문학상,
전미 도서 상 등 유명 문학상을 휩쓴 여성 작가인데 처음 알게 되었다.
회고록이라서 그런지 옛날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있고 읽는 동안 아주 평온한 상태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미시시피 잭슨 콩그레스가의 집에는 언제나 시계 종소리가 울려
퍼지곤 했다. 떡갈나무로 만든 중후한 대형 괘종시계의 징 소리 같은 종소리는 거실, 식탁, 주방,
식료품 저장실은 물론 계단을 타고 위층까지 울려 퍼졌다. 그리고 부모님 침실에 있는 소형
괘종시계와 서로 종소리를 주고받았다. 작가의 '귀 기울여 듣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아침마다 신발에 달린 단추를 채우는 데 시간이 걸리는 동안 계단을 사이에 두고 2층에서 면도하는
아버지의 휘파람과 아침을 준비하는 어머니가 흥얼거리며 주고받는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노래와 웃음으로 시작하는 하루라니, 그야말로 사랑이 넘치는 가정에서 작가는 성장한 것이다.
책을 좋아하는 어머니가 읽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꽤 어렸을 때부터 책과 알파벳을 사랑하고
학교에 입학하기 전 말과 글을 배웠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책을 소중히 여기던 서재 외에
집안 곳곳에는 일하다가 잠시라도 읽을 책들이 놓여 있었다. 조부모님 때부터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부모가 꼬박 주일날 교회에 가지 않아도 주일학교를 다녔고, 거짓말을 안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작가가 언제나 삶의 신성함과 경외, 신비함을 느낄 수 있는 바탕이었다.
좀 커서는 읽고 싶은 책을 도서관에서 언제든 빌려 읽을 수 있었는데 이야기가 다 끝나 책장을
덮어야 하는 순간이 가장 두려웠다니, 문학 방면에 남다른 소양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책을 읽어도 읽어도 더 읽고 싶어 하는 마음에 공감해 주었고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도 받아들였다.
자유로운 기질과 모험적인 삶을 살고자 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가족과 멀리 떨어져 산
어머니와 팔방미인의 능력자요 개척자, 용기 있는 변호사인 외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아버지는 늘 미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으로 모든 상황에 대처할 준비를 신중하게 하면서도
낙천적이었다. 웨스트버지니아(외가)와 오하이오(친가)의 산골을 오고 가는 여행은 깊은 인상을
남겼고 하나의 이야기로 형태가 갖추어져 있었다. 여행은 새로운 것을 알려주고 무언가를 별견하고,
특별한 깨달음을 주었다. 그래서 여행을 반추하며 자신에게 남긴 것들을 소설의 일부로 만들었다.
20대가 지나고 작가는 기차를 타고 가는 여행 경험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
자신이 발견한 세상에서 사랑을 느끼게 된다. 또 무언가를 알고자 하는 욕구가 내면에서 끊임없이
이어졌는데 세상과 연결되고 싶다는 불안한 마음은 세상에 대한 열망으로 바뀌고, 세상의 일부가
되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했다.
한편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할 무렵 홍보 기자로 이야기를 취재하고 사진을 촬영한 경험에서
가장 중요한 배움을 얻게 된다. 사진을 찍는 순간과 행동에서 준비된 자세를 갖추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삶은 정지된 것이 아니고 좋은 사진은 어떤 순간이 사라지기 전 포착해서
결정적인 순간을 담아내야 한다. 가지각색의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모습을 촬영하며 그들 몸짓에
다양한 감정이 실려 있음을 이해했다. 어떤 장면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것을 인식할 준비가 미리
필요했다.
작가는 사진 촬영에 임하는 자세를 통해 소설가의 입장으로 글을 통해서 찰나의 삶을 포착해야겠다는
열망을 느꼈다. 소설에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세심하게 들여다보면서도 관찰자로서 작가의 관점,
시선의 방향이나 프레임을 통해 대상과 거리를 두게 된 것도 이런 경험 덕분이었던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가 항상 어떤 상상과 꿈, 기억이 투사된 환상, 환영이 이끌고 나갔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장면의 상황보다 상황이 주는 의미가 더 중요해졌고, 이 모든 것보다 어떤
프레임에도 국한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온전한 존재'가 훨씬 더 중요함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귀 기울여 듣고 자세히 보고 자기의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이 작가의 시작이다. 인간을 이해하고
세상을 보는 나만의 관점(시선)이 중요하다. 유도라가 그랬듯이 무엇보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글을 쓰는 것이 행복하다는 게 먼저다. 그림그라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