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게보르크 바흐만 <삼십 세>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내가 속한 사회의 경향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면 어리석은 자가 된다.
"여러 사람의 몰에 대해 그는 거듭 대비해야 하리라. 그는 여기저기에 다른 숱한 몰을 너무나 많이
알고 있다. 그러나 이제 와서야 비로소 그는 이 단 한 사람의 몰에게 부딪힘으로 해서, 세상에는
몰이 단 한 사람뿐이 아님을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다."
일찌감치 다른 사람들의 기준과 시선에 맞추어 살아가면서 성공한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 있다.
친구 '몰'은 자신의 의견은 없으면서 온갖 의견의 대표자이다. 화자 자신도 그와 비슷했던 점을
깨닫는다. 사리에 밝고 마치 인생의 답과 행복이 정해져 있는 양 착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남의 부러움을 산다 해도 자신의 참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삼십 세>에서 화자는 자신이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삶에서 균열을
느낀다. 앞날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나 책임을 미루며 젊음이라는 자신감만으로도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그를 보고 젊다고 부르는 것을 그치지 않고 자신도 일신상
아무런 변화를 찾아낼 수 없다 하더라도, 그는 스스로를 젊다고 내세우는 것이 어색해지고 무엇인가
불안정해져 간다. 선택의 여지가 줄어들고 남은 삶의 여정이 점점 제한되는 듯한 느낌에 직면한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결정이 점점 중요해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무엇을 진정 생각하고, 할 수 있는가. 자신에게 진실로 중요한 게 무엇인가?
"나는 이 나이를 버틸 수 있을까. 서른이란 나에게 소망 없는 불행 같고, 미래는 닫힌 문처럼 보인다."
"비록 나 역시 천 번은 배신하지 않으면 안 되었지만, 나는 자유를 사랑한다. 지금의 이 위엄을 잃은
세계는 끊임없이 자유를 내던져온 결과다."
최영미 시인도 <서른, 잔치는 끝났다>에서 서른을 좀 특별하게 바라보고 진지하게 지난 시절을
반추한다. 현실에 대한 자각과 함께 세상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자신의 세계를 지켜내기가
힘들다고 고백한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는 것은 어느 나이를 불문하고 계속되어야
하지 않을까? 30세가 두려워 자유를 찾아 나선 여행에서 그는 친구들을 만났고 자신에 몰두할 시간을
갖는다. 사고를 당하고 회복된 뒤 살아있음에 감사를 느끼며 현재를 살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내 그대에게 말하노니 - 일어서서 걸으라. 그대의 뼈는 결코 부서지지 않았으니"
우리의 전성기는 언제였을까? 다시 <삼십 세>를 훑어보니 그 나이 언저리에 가졌던 생각과 감성이
되살아난다.
삶의 과제에 치어서 정신없이 살다 보면 잘 모르고 지낸 후 나중에야 그때가 좋았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 조급해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수월하게 넘길 여유가 생기긴 해도 사는 것이 힘들지 않을
때가 있을까? 향상 여기 , 그리고 지금에 충실하게 살아가고 작은 일에 큰 사랑을 기울여서 하는 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