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밑바닥까지 즐거움을 주는 것

<벤야멘타 하인 학교> 로베르트 발저

by 명규원


스위스에서 태어난 로베르트 발저(1878년 4월 15일~1956년 12월 25일)는 미미한 존재로 살았다.

그는 세상과 더없이 덧없는 방식으로만 관계했다. 집은 물론 지속적인 거주지, 집필을 위해 필요한

가구 한 채, 물건조차 없었던 것이다. 다만 그의 댄디한 취향에 맞게 변변한 양복 한 벌이 있긴 했다.

<굶주림>을 쓴 노르웨이 작가 크누트 함순도 똑같은 처지였기에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발저는 더 가난했던 것 같다. 가정 형편상

학업을 포기하고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열네 살 때부터 은행 수습생으로 나서면서 스위스와 독일의

여러 도시들을 옮겨 다니며 조수, 사서, 비서 등으로 일했다. 스위스로 돌아온 1907년부터 베를린 작품

삼부작이라 불리는 <탄너 일가의 남매들>, <조수>, <벤야멘타 하인 학교>를 연달아 발표한 뒤 호텔

다락방에 7년간 머물며 글을 썼다. 1925년 마지막 책 <장미>를 출간하고 조현병 증세로 고통받다가

누나의 권유에 따라 들어간 정신병원에서 여생을 마쳤다. 상태가 호전되고 나서도 오갈 데 없던 그는 계속

정신병원에 머물며 도보여행을 즐겼고 종이를 아끼기 위해 매우 작은 글씨로 엄청난 분량의 집필을 남겼다.

세상에 있지만 거의 없는 듯한 존재로 오래 잊힌 채 무명이나 다름없다가 죽은 후에 주목을 받게 되었다.

비록 제대로 교육을 받지도 못했지만 천재적인 작가였던 것이다.


아무것도 가르치는 것이 없는 학교의 마지막 학생이 된 야콥 폰 군텐의 이야기는 작가가 살재로 겪은 경험을

바탕에 두었다. <벤야멘타 하인 학교>는 상상의 산물이 아니다. 발저는 27세 때(1905년) 하인 학교에 입학해서 집사 교육을 받았고 오버 슐레자엔 성에서 얼마간 하인 생활을 했었다.

가만히 있기(하염없이 기다리기), 주는 대로 먹기, 가르치지 않음으로 가르치는 학교라니! 요즘 아이들이라면

그런 상황을 상상할 수 없을뿐더러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오든가 난동을 부렸을 것이다. 그런데 학교의

이상을 체현하는 크라우스는 그 어떤 동경이나 권태, 사랑, 증오도 알지 못한다. 모든 사유와 감정조차 부정하는

‘무'로서 추앙받는다. 하인의 이상형은 바로 인격을 완전히 부정함으로써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야 멘타 하인 학교>는 지금까지 대부분의 소설과 전혀 다른 세계를 펼친다. 자신의 처지를 극복해서

뭔가를 이루어내는 주인공들을 볼 수 없다. 쓸모없는 존재라는 인식 속에 살아가는 하류 캐릭터를 그린다.

규칙에 따라 살아가고 이런저런 기술들과 언어, 혹은 훌륭한 예절들을 배워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할 뿐이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도피처를 찾기도 하고, 크고 작은 일탈과 쾌락을 추구하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인데

‘복종‘이 중요한 주제다. 주인공은 주체적으로 사고하지만 깨달음이나 성공에 대한 가능성을 찾지도 않고

반항 대신 기존 질서에 대한 복종을 선택한다.

로베르트 발저가 근대적 교육과 교양 이념을 거부한 이유는 뭘까? 소위 귀족 가문이거나 출세(성공)로

부유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위선과 자만심, 허위의식을 보면서 환멸 내지 거리감을 느꼈을 것이다. 세상은

너무 뻔하기 때문에 지루한 일들로 가득 차 있고 추구할만한 가치가 아무것도 없다는 자각은 극단적이다.

계산적이고 무미건조한 세상 어느 곳에서도 적응하지 못했지만 그의 자부심은 남달랐다. 어쩌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복종(순종)’있음을 간파하고 자신의 삶에서 실천한 것인지 모른다.

"기쁨과 즐거움에 자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용감하게 극복한 어려움이나

잘 참아낸 고통만이 자부심과 영혼의 밑바닥까지 즐거움을 준다."

우리가 자라던 시대에 꿈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훌륭한 사람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 몰라도

어려움을 이겨내고 국가나 인류를 위해 공헌한 위인들로 생각했다. 그런 시대적 분위기는 적어도 이삼십

년 이상 이어진 것 같다. 지금이야 자기만족에 가까운 소확행 같은 작은 것들에 집착해서 살아가야 할 분위기이지만.

그런데 발저는 뭔가를 성취해 내고 성공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기쁨과 즐거움이 사실 별것 아니란 말을 벌써 했다. 영혼의 밑바닥까지 즐거움을 주는 것은 어려움을 극복해 낸 용기와 고통을 잘 참아낸 인내라는 것이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지만 개개인이 자신의 삶에서 이루어 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대를 앞서서 삶에 본질적인 것을 깨달은 것 같다.

그는 인간에 대한 기대를 갖거나 현실에 타협하기보다 어떤 식으로든 그가 삶에서 느낀 절망과 무력감을

개인적이고 내밀한 방식으로 극복하기 위해 글을 쓴 것으로 보인다. 예술가나 작가의 희생적인 노력이

흐르는 강물에서 아름다움의 가치를 건져낸다고 말했던 것에서 인생에 대한 그의 목표를 짐작할 수 있다.

철저한 아웃 사이더였던 그에게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순종’이야말로 구원의 길이었다.

그가 걷기와 쓰기에 강박적으로 매달려 산 것은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유일한 선물인 ‘자유’였기

때문이다. 생이 아름답다고 느끼고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분명히 내면이 단단하고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을 로베르트 발저가 가까이 있다면 그가 평생 좋아했던 산책에

꼭 동행하고 싶다. 선책 하는 동안 주변의 풍경, 서로의 의견, 다양한 발견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그가 누렸던

최고로 아름답고 좋고 간단한 즐거움을 우리는 놓치고 살아간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가진 것이 너무 많다.

어떻든, 성실하게 살아가더라도 절망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 대해 그가 이렇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희망, 계획, 꿈이 완전히 파괴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나요? 한 번도 밀려나 본 적

없이 갈망, 과감한 소원, 달콤하고 드높은 행복의 상을 성취한 그런 사람이 어디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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