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법

<개인의 탄생> 래리 시탠톱

by 명규원


시장에서 장을 보고 나와서 마을버스를 기다릴 때 늘 마주치게 되는 할아버지가 있다. 작은 트럭에


과일이나 야채를 늘어놓고 파는데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아도 꾸준히 자리를 지킨다. 가끔 나중에


챙기려다 놓친 것이 생각나서 사게 되었고 마을버스를 기다리다가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장사는 좀 되나요?"


"··· 집에 있으면 뭐해요, 나와 있으면서 시간이나 팔아야지. 난 시간을 팔러 나왔어요."


삶 속에서 깨달은 지혜의 말씀이다. 철학자가 따로 없다.


"나는 시간을 팔아요!"



자연의 변화를 관측하면서 시간의 개념을 발전시켜 온 인류는 시간의 단위를 통일시키고 시간을

맞추어서 생활한다. 갈릴레오는 떨어지는 모든 물체가 그 무게와 관계없이 같은 비율로 속도가

증가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또한 실험을 통해 시계의 원리가 되는 추의 진자운동도 밝혔다. 이제

우리는 관찰과 실험이라는 경험주의 사고를 누구나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세상에 살게 되었다.

그래서 몇 천 년 전부터 구전되다가 쓰인 구약성서는 현대인의 사고에 맞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구약성서는 특히 신의 명령(법)과 약속에 대한 증언과 이야기들로 되어 있다. 이성으로 다 헤아릴 수

없는 신의 의지에 복종하는 것이 올바른 삶의 길이고 신앙의 미덕이라는 점을 주장한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신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선택받은 '하비루'(청동기 가나안 사회의 주변에서 살았던 반대자들과

권리를 빼앗긴 종족들)였던 이스라엘 민족은 우상 숭배에 빠져 신의 뜻을 저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신적

도움으로 이집트 노예 신분에서 탈출한 사건을 기억하고 강한 정체성을 지니게 되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민족은 신이 사건들을 전반적으로 통제하고 역사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믿음을 끝내 버리지 않았다.


신은 인간에게 계시하는 사건을 일으켰고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표현했다. 신은 자신의 백성들과 인격적

관계 속에 '약속의 땅'으로 이끌며 거듭 자신의 법을 따르도록 훈련시켰다. 생명의 성장과 쇠락이라는

자연의 변화가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정치체제도 순환된다는 당시의 사고방식과 다른 인간의 이해가 생겨

났다. 사막을 가로질러 부는 바람이 매일 풍경을 바꿔놓는 유목 민족의 경험은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어떤 것도 이전과 다시는 똑같을 수 없다는 '시간의 본질'은 순환이 아니라 직선적이었다.


그러므로 신의 주권적인 방향 아래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믿음은 자연의 질서와 사회의 계급 조직을 결합시켰던 '자연적 불평등'이라는 고대의 개념과 상충하게 된다. 기독교는 어쨌든 고대의 가부장적 가족 종교에 바탕을 둔 로마제국에 일종의 반란으로 시작되었다. 교회는 '개인의 자유의지'와 '양심'을 신성시하면서

새로운 도덕적 바탕을 창조해 냈다.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정의'나 '로고스'와 같았던 '법'은 이제 세습적 원칙이 아니라 모든 영혼에 평등하게 적용되는 토대를 갖게 되었다. 고대 노예제와 전통사회의 불평등 대신

양심과 자유, 도덕적 책임이 오늘날처럼 자연스럽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바로 인류 최고의 작품인 '개인'의 탄생에 따른 것이다! 서구에서 출발한 민주주의는 개인이 도덕적 단위이자 행위자로서 사회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고, 무엇보다 양심의 중요성을 인식한 결과이다.


양심의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오컴(영국 프란체스코회 수도사이며 철학자, '오컴의 면도날'로 유명)은

의도가 훌륭한 행동인 경우에는 정의의 명령과 충돌을 빚더라도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행위자가 판단을 잘못했더라도 자신의 의도가 정의와 일치한다고 믿고 있을 때, 그 사람은 자신의 양심을 따를

의무가 있다. 자유가 도덕적 행위의 필요조건이고 자유가 없으면 도덕적 행위라는 개념 자체가 모순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발생과 긴 역사적 과정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보다 본질적인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 모든 인간이 '영혼'을 가졌고 '법(신) 앞에서 평등하다'라는 기독교적 사고가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것이다. 그래서 법이 중요하다. 민주주의는 각 개인이 도덕적 단위이며 행위자로서 사회적 역할을 할 때 가능한 체제이다. 권력을 견제하는 장치가 있긴 해도 합법을 가장한 집권세력에 의해 악용될 여지가 있다. 깨어있는 시민들이 정원을 가꾸듯이 돌보아야 한다. 완성된 제도가 아니기 때문에 거짓과 선동에 넘어간 결과 나치 정권도 등장했다. 양심과 도덕적 능력이 결어된 자들이 사회 지도층으로 사익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지키고 민주주의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게 해야 한다. 현재로선 법이 제대로 지켜지는 것이 우선이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무너지면 공정성이 확보되지 못하고, 자유가 위협받는 상황이 닥칠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과 판단이 중요한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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