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탄하고 경험하고 만들어나가는 삶

<무신론자의 시대>, 피터 왓슨

by 명규원

누구나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런데 글로 표현할 경우 달라진다.

자신의 관점을 가지고 적절한 단어를 찾아 배열하는 것에 따라 공감을 얻고 읽힐 만한

가치가 생기거나 그렇지 않게 된다.

외국 여행을 통해 새로운 경험과 사고의 전환을 가져온 예는 몇몇 작가들이나 예술가에

의해 잘 알려져 있다. 앙드레 지드에게도 자신의 감각을 예리하게 벼리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할 때 ‘여행’은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북아프리카 여행을 통해 지드는 자아를 구속하던

여러 가지 생각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방인에게는 어떤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여 자지

않으며 토박이 주민들은 도저히 할 수 없는 방식으로 모든 것을 예민하게 지각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드는 보편적인 것보다 특수한 것, 개별적인 것에 관심을 두었다. 개인의 실존 자체를

풍성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삶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진실’은 예술적이든

과학적이든 철학적이든 어떤 정해진 절차를 통해서가 아니라 ‘인식과 감각’이 직접적으로 가닿을

수 있는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무엇도 ‘내가 그것을 보았다’ 라거나 ‘내가 그렇게 느꼈다’라고 말하는 개인의 주장을 묵살할

수 없다. 그런데 경험을 체계화하려는 모든 시도는 ‘변질시키고 왜곡하고 빈약하게 만들’뿐이다.

1897년 < 지상의 양식>은 본질적으로 ‘우리와 만물 사이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도록'

정신에서 그 내용물을 비워내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존재는 거리를 둔 채 머릿속으로 생각해 낼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돌연히 당신을

침범하여 그 자신을 당신에게 고정시켜야 한다.” 그에게 ‘논리’란 우리가 다른 편에 존재하는

혼란을 깨닫지 못하게 막는 일종의 정신적 장애물이었다. 보들레르와 세잔, 자신의 친구

발레리가 보여주려고 노력한 것이 바로 이 혼란이라고 생각했다.


사물들이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스스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면 철학과 이데올로기는 감탄을

방해할 뿐이다. 언제라도 기꺼이 행동을 통해 경험을 얻겠다는 태도를 유지하는 게 자신을

뛰어넘어 더 많이 성취하는 길이다. 그런데 가장 큰 성취감을 주는 완전한 경험에는 ‘자기 상실’이

따른다. 몽테뉴가 이미 성찰한 대로 '자아'라고 부를 만한 고정불변의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의 성격이란 '비 안정적'이다. 지드는 성격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으면서, 무어라 정확히

짚어낼 수 없는 생성의 과정에서만 스스로를 의식한다'는 점을 몽테뉴가 깨달았다고 평가했다.

인간의 의무는 '자신을 뛰어넘는 것'(니체)이며, 특정한 목표를 향해서가 아니라 단지 실존 자체를

풍성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지상의 양식>에서 그가 말한다.

모든 감각과 정신을 일깨우면서 감탄하고 직접 경험하는 것이 살아있는 삶이다. 자유롭게 결단을

내리고 행동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