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게 하는지
불완전하고 모순된 존재, 넘어서야 할 한계를 의식하면서도 변하기 어려운 게 사람이다. 한때는 '인간'과
'인류'라는 말에 가슴이 뭉클하고 온갖 고상한 사상과 이상적인 이념을 좇아 살고자 했었다. 그러나 현실과
커다란 괴리가 있는 관념들임을 깨닫고 삶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결혼했다. 엄마가 되어 아이들을 낳고
키우는 동안은 삶이 충만해 있었다. 생명을 품고 돌보는 일속에서 선험적으로 주어진 모성을 따라 살며
결핍을 모르고 지냈다.
물거품처럼 약한 생명체를 보듬고 간에서 떨어진 것처럼 밀착된 시간들을 보냈다. 그렇게 어린아이가 성장해 가는 모습을 가까이 지켜보는 일은 기쁘고 보람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존재가 되어 가장 소중한 존재
곁에서 보냈던 시간은 어느새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제 내 품을 떠나간 딸들은 스스로 자기 세계를 펼쳐 나가고 있다. 늦둥이 아들이 아직 남아있긴 하지만 알아서 할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세상에 더 바랄 것이 없는 것처럼 살다가 얼마 전부터 나도 몰랐던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기회가
우연히 찾아왔다. 어떻게 할 수 없는 감정에 대해 거리를 두고 곰곰이 생각해 봐도 답이 안 나왔다. 살아온
이력과 나이를 생각하면 감정을 배제하고 사태를 직시해야 맞는데 잘 안 되는 것이 문제다. 어느 순간 간직
했던 기억이 살아나고 그리움으로 마음을 채우게 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커져버린 그리움 때문에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운명은 우연으로 시작되는가? 왠지 그때 우리의 만남과 최근 재회할 뻔한 일은 우연이 아닌 것만 같다.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아득히 먼 곳에서 다가온 어떤 약속, 아직 많이 남아있을 것 같은 미래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