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밝혀주는 것

<고통의 문제> C.S. 루이스

by 명규원


평범한 삶에 한데 섞여있는 고통과 괴로움이 없다면, 우리가 누리는 기쁨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를 것이다.

C.S 루이스는 <나니아 연대기로> 잘 알려진 작가이지만 동심의 세계뿐 아니라 인간이 겪어야 하는 상실과 슬픔, <고통의 문제>를 신앙적으로 깊이 있게 다루었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인간의 삶은 어느 시대나 예외 없이 고통스럽고 황폐했던 것이 분명하다고 본 그는 종교의 기원을 경외감, 도덕적 경험, 역사적 사건들과

연결시킨다. 우주가 지혜롭고 선한 창조자의 작품이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의로운 존재자가 있다고 생각할 때 문제시되는 것이 바로 '고통'이다.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전능자는 인간의 고통이나

공과(功過)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기도로도 바뀌지 않는 가차 없는 '자연법칙'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인간

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 자연의 불변하는 법칙과 질서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자유의지에 따라 선택하고 행동하는 인과적 필연성에 따른 결과가 주어진다. 그것은 일상의 삶을 제한하는 한계인 동시에 그러한 삶을 가능케 해 주는 유일한 조건이기도 하다. 따라서 자연질서 및 자유의지와 맞물려 있는 고통을 배제한다는 것은 삶 자체를 배제하는 것과 같다.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아집) 혹은 잘못 때문에 생기는 고통을 하느님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명심해야 할 것은 인간의 고통과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조화시키는 데 있어서 우리가

'사랑'이라는 말에 의미를 부여하고 인간이 만물의 중심인양 생각하는 한 결코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하느님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플라톤의 말처럼 인간의 사랑은 필요 내지 결핍의 산물로서, 사랑하는 쪽에서 필요로 하고 갈망하는 선한 것이 그 대상 안에 실제로 있거나 또는 있다고 여겨질 때 생겨난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은 자신이 먼저 인간을 사랑하여 존재하게 하였고 본질상 모든 것을 주되 아무것도

받지 않는 것이다. 인간의 영혼이 하느님을 추구하고 사랑한다기보다 하느님이 찾으실 때 반응하는 것이다. 그의 요구에 복종하고 그 뜻을 따르는 것이 우리 삶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고통을 두고도 흔히들 '나중에 큰 복을 받으면 뭐해. 지금 이렇게 힘든데'라고 말하지. 일단 천국을 품으면 그게 뒤에서 작용해서 괴로움을 영광으로 바꾼다는 사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네."

<The Great Divorce>(Macmillion, 1946), p.64.


영화 <Pain and Glory>의 제목도 마치 C.S 루이스의 책을 읽은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핵심을 간파한 것이어서 놀랐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자전적인 영화 초반에 "한 가지 고통쯤은 무신론자에 머물게 하지만 두 가지 이상의 고통은 유신론자로 만든다. "는 고백은 너무 솔직해서 웃음이 나왔다. 사실

모든 인간은 신을 믿기도 하고 믿지 않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지 않은 삶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의 뿌리와 끝이 어머니라는 점을 확인하는 감독은 어머니를 사랑했듯이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찍으며 살아내야 할 용기를 되찾는다. 병들어 고통스러운 몸을 일으키고 침체된 마음에 의욕이 샘솟는다. 인간의 내면세계와 그 중심에서 나온 힘, 진실은 감동을 준다는 믿음이 깔려있다. 영화가 의도한

메시지를 어떻게 수용하고 해석하든 나에게 분명히 와닿은 것이 있었다.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서도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한다는 믿음, 분명히 살길을 열어주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견딜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가 잠잠히 기다려야만 하는 시간은 더디게 흘러간다. 나도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나서 결국 바라던 결과를 얻었을 때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벅찬 기쁨이 밀려왔다.

살아가는데 엄청난 용기나 인내, 희생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 구원에 이르려는 안간힘을 쓰긴 하지만 별 의식 없이 무감각하게 흘려보내는 날들이 대부분이다. 고통이나 고난이 없다면 기쁨과 감사를 느끼기도 어려울 것이다. 쓴맛을 모르는데 단맛을 어찌 알겠는가! 고난이 허사가 아니라는 소망이 필요하다.


"더없이 심오한 진리는 한없는 즐거움을 부르게 마련이지만, 즐거움만으로는 깊고 깊은 진리들을

밝혀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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