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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규원 Feb 04. 2022

'초월'을 사유하는 것

명상에 대하여

하루 중 나는 무엇을 생각하는 것일까? 내가 오늘 처리해야 할 일들이나 가까운 사람들과 관계된 걱정과 바람 같은 거 말고 저녁 메뉴를 떠올리다가 시간을 보낸다. 물론 책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할 기회를 갖고 산책을

하다가 문득 새롭게 깨닫는 시간을 만나기도 한다. 

인간이 의식을 갖고 산다고 하지만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나 숙고를 찾기 힘들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묻지도 않고, 인간을 전제한 채 신이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하는 온갖 행태를 보면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주장하며 영역 싸움을 할 뿐이다. 좀처럼 자기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현실적인 이해관계에 

얽매여 있다. 인간의 객관화가 가능할까? 답이 없다. 그래서 "인간을 알려면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을 알려면 인간을 알아야 한다"라고 칼뱅은 말했다.

생각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할 줄 아는 능력에서 시작한다. 자신의 결함을 파악하고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야 한다. 사물 속에서 본질을 보고 근본에 다다를 때까지 파고들면서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은 없는지도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분주한 일상생활의 압박을 멈추고 생각을 깊이 하는 것이 가능할까? 

'명상'은 지적인 문제를 가지고 오랫동안 심사숙고한다거나 신비적인 집중의 시간과 같은 것이 아니다. 이 개념을 보통의 삶과 거리가 있는 것처럼 혼동하는 이유는 종교적인 수행처럼 여겨지는 측면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이 그렇듯 음악을 듣고 책을 읽거나 그림을 감상하는 일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잠시만이라도 자기를 벗어나기를 요구한다는 의미에서 풍부한 명상이 된다. 예술은 기대하지 않은 것과 역설적인 것을 드러내는 형식을 가진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하지 않고 자기만족의 껍질을 깨뜨리도록 자극한다. 이런 경험은 정신상태가 안개 끼듯이 다소 몽롱해 있는 신비적 요소가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예술과 문학작품으로부터 도전을 받고 반응(생각)하는 즐거움(느낌)을 갖는다. 

 

우리의 존재에 대한 일상적인 답변이 이렇게 예술가나 작가에 의해서 능숙하고 기술적으로 벗겨지고 초월적인 것이 된다면 '명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바로 우리 가까이 무미건조하고 진부하여 지겨운 일상에서 '초월'을 사유하는 것이 가능하게 해주는 예술과 문학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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