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잔의 산을 찾아서>, 피터 한트케
동양화를 관념적인 그림으로 생각하는 것은 '선' 중심의 표현 때문일 것이다. 사실 자연에는 선이 없고
모든 것은 덩어리로 존재한다. 그런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화가들이 자연이나 사물을 눈으로 본 그대로
그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중세시대에는 물론이고 르네상스와 근대에까지 과거에 잘
알려진 작품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배운 형태들을 답습하고 배열하면 되었다.
지금이야 아무 문제도 아니지만, 서양의 아카데믹한 전통과 수법을 벗어나서 인상파는 자연과 각각의 대상들에 대한 새로운 관찰을 통해 색채와 입체감의 묘사 방법을 발견했다.
기존에 알고 있거나 배운 대로 그리기보다 자신이 눈으로 보고 느낀 인상에 따라 빛의 감각과 움직임에 충실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인상파 화가들은 '자연'을 그리는 데 있어서 진정한 대가들이었다. 오늘날 사람들이 '그림 같은 풍경'이라고 할 때 인상파 그림을 통해 익숙해진 자연의 아름다움을 일컫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세잔은 과거 위대한 그림들이 지니고 있던 조화로운 구성,
견고한 단순성과 완전한 균형을 찾고 싶었다. 하나의 정물화를 완성하는데 100회를 작업했고, 초상화를
그릴 때는 모델을 150번이나 자리에 앉혔다. 그러니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참을성 많은 모델이
되어준 오르탕스 피케와 결혼했을 것이다.
"그림의 올바른 길을 찾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네."
1879년 졸라에게 털어놓았던 말대로 그는 과거에 축적된 관행들을 제거하려고 노력했다. 다른 무엇도 거치지 않은 직접적인 방식으로 자연에 접근하려고 한 것이다. 릴케와 마찬가지로 세잔은 고독과 외딴 풍경의 진가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릴케가 분열된 인간과 자연 사이를 이전으로 되돌리는 일을 스스로 부여한 자기 생의
과업으로 삼았듯이...
푸생과 같은 고전적 거장들이 놀라운 균형과 완벽성에 달성했던 것처럼 그의 이상은 인상파 화가들과 달랐다. 사과든 산이든 대상을 비추는 햇빛을 이용해서 대상의 색채를 조절하는 인상파의 주요한 발견과 야외작업,
색채로 그림자를 표현하는 기법 등은 고수했지만 그는 형태감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물감을 모자이크의
네모꼴 모양으로 붓질해 나가면서 부드럽고 유동적인 사물의 표현과 공기의 흐름까지 느끼게 만들고 싶어
했다. 그가 보고 느끼는 대로 그린다고 하는 것은 '사실적'인 것과 다르다. 새로운 형태의 공간 구성과 조형원리를 찾았고 예술의 완성이라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자연에서 생겨난 푸생'을 그리려고 분투했다.
세잔은 친구 에밀 졸라의 권유로 파리에서 창작활동을 시작했지만 고향 엑상프로방스로 돌아와 아름다운 풍경을 평생 화폭에 담았다. 지칠 줄 모르고 자연을 관찰하면서 야외작업에 매력을 느낀 세잔이 말년에 집중적으로 그린 '생트빅투아르 산'은 수십 점에 달한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을 시각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색채로 자연을 '해석'하고 고정된 원근법도 무시한 것이다.
왜 그는 생애의 마지막을 생트 빅투와 르 산을 그리는 데 몰두했을까? 실제로 존재하는 자연 풍경 이상으로
독특한 매력과 신비를 품고 있는 이 산은 세잔의 아틀리에가 있는 엑스에서 정확히 걸어서 반나절 거리,
자동차로 삼십 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닭 벼슬 형상의 산마루에 높이가 천 미터, 석회암의 주름진 습곡으로 이루어진 생트 빅투와 르 산은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오르는 듯한 영원의 산이다. 페터 한트케도 그림 이상의 산, 자신을 사로잡는 뭔가에 이끌려 직접 찾아간다.
여행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상상의 문이 열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산은 여러 개 겹쳐진 산마루 능선의 단면들은 서로 중첩되어 길게 늘어진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절대로 육안으로 식별할 수 없는 이 봉우리는 두드러진 음영으로 착색되어 다소 크거나 작게 그려져 있다. 맨 눈으로 가늠할 수조차 없는 산봉우리를 세잔은 선영을 넣어 너부죽하게 벌어진 모양으로 그렸을 뿐만 아니라, 윤곽선을 다잡아 그리기까지 한 것이다.
"세잔이 그린 봉우리는 유일하면서도, 동시에 이와 똑같은 봉우리가 겹쳐있는 형국을 그렸다는 사살을 깨닫게 된 것이다."
"좀처럼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세잔이 그린 산과 실제 생트 빅투와 르 산의 모습은 오로지 서로 다른 형상
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실제 내 앞에 우뚝 선 생트 빅투와 르 산을 보자 이제까지와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세잔은 실제 산을 달리 그린 것이 아니라, 보다 더 절묘하게 표현한 것이라는 사실, 상상이야말로 훨씬 더
논리적이지 않은가."
그는 "꿈을 통해 오브제들 한가운데로 진입하라."는 글쓰기의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사물을 상상을 통하여 은유하는 것이 작가의 몫이고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가는 문체야말로 이상적인 글쓰기의 핵심이라고 생각한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 지적으로 인지한 것은 쉬 사라지지만, 상상력을 통해 인식한 것만큼은 결코 사라지는 법이 없다는
사실을. "
페터 한트케가 어떤 작가인지 모르고 세잔을 좋아한다는 것 만으로 이 책을 읽었다. 한참 지난 후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된 사실에 저으기 놀랐다. 그림을 그리면서 부딪치는 모든 문제의 답을 세잔은 스스로 탐구하여 찾아냈다. 그 이전에 어떠한 그림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새로 출발하기로 결심했다. 자연과 구체적 대상을 그리면서 데생이나 색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화면의 구성과 조화를 이루어내고 평면성을 나타내려 한 것들은 마티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구도자적 자세로 주위의 평판에 신경 쓰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의 예술세계를 추구해 나갔다. 세잔의 예술에 대한 성취를 탐색하면서 그런 불멸의 화가를 알아보았다는 사실이 페터 한트케의 남다른 작가적 능력을 말해준다고 하겠다.
(나는 아직도 형태에 집착하고 있다. 상상과 추상의 세계는 거리가 멀다. 세잔의 시대에 속하지도 가까이 가지도 못했다. 나는 어느 시대에 속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