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사생활: 비참과 우아>, 노승림
사계절 중 '봄'은 순수하다. 우리를 감동시키고 아무 조건 없이 다가서게 만드는 것들이 지닌 힘이
'순수'가 아닐까? 세상의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들지 않는다. 여리고 작고 부드러운 이 계절이 오면
다시금 설레고 피어나는 꽃들과 신록에 마음이 꿈꾸듯 열린다. 순수하고 어름답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유럽에서 미술의 목적은 원하고 즐기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것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교회나 귀족, 왕실의 요구에 맞춰 주제를 정하고 각 시대에 맞는 '이상적인 미'에 충실하려고 했다.
빛과 색채의 강조라든가 단순한 균형보다 복잡한 구도나 운동감을 선호한다든가 하는 이념에
따라 회화나 조각이 이루어졌다. 미술의 '양식'이란 어떤 효과를 달성하기 위해 가장 올바르고
훌륭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너나없이 따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종교적 주제들, 성자의 전설들, 그리스 신화나 로마의 영웅 설화뿐 아니라 시사적 사건이나
상상력에 호소하고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모든 것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영국의 산업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전통적인 주제들이 사라지고
화가 개인의 생각과 환상의 세계를 펼쳐놓는 자유를 얻게 되었다.
혁명정부에 참여했던 자크 루이 다비드는 <암살당한 마라>를 그렸고, 나중엔 나폴레옹의 대표적인
초상화와 대관식 장면을 그렸다. '그의 그림에서는 권력의 냄새가 난다.' 그런데 왕정으로 복귀한 후
"로베스 피에르의 열정에 속았던 것이며, 내 심장은 순수한데 오직 나의 머리가 잘못되었던 것"이라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옛 동지를 배반하고 살아남은 결과다.
고야는 엘 그레코와 벨라스케스를 배출한 스페인 회화의 훌륭한 전통을 몸에 익히고 있었지만 국왕을
비롯한 귀족들을 무자비하고 냉혹한 시선으로 꿰뚫어 보았다. 궁정화가이면서도 자기 후원자들의
허영과 추악함, 탐욕과 공허함을 낱낱이 폭로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습이 참 꼴불견이다!
또한 자신이 스페인에서 목도한 우매하고 반동적이며 잔인하고 억압적인 폭력을 고발하고, 악몽들을
형상화한 판화도 제작했다. 그러나 그의 감추어진 이면은 '걸어 다니는 색마, 신이 아닌 인간의 알몸을
그리다'로 집약된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그의 손바닥에 무한을 쥐고
찰나의 순간을 통해 영원을 보라.
'순수의 전조' 윌리엄 블레이크
미술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자세는 영국의 시인이면서 신비주의자인 윌리엄 블레이크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다비드와 달리 블레이크는 그야말로 순수했고, 심지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다. 실제로는
자기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에 사는 신앙심 깊은 사람이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에 당시 런던의
비참한 현실을 겪으면서 도제 생활을 하다가 스승의 추천으로 왕립 미술원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그러나 그는 아카데미의 관학적인 미술, 즉 고전 고대의 작품이 최고의 미를 지니고 있다고
보며 미술가란 자연을 연구하고 나체화부터 그림을 배워야 한다는 통념을 경멸했다.
글과 그림 모두에 재능이 있었던 그의 첫 시집 <순수의 노래>는 프랑스혁명이 발발한 해 나왔다.
직접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삽화까지 그려 넣었지만 삶의 어두운 이면이 가감 없이 고발되고 있다.
그는 환상의 세계에 빠져 현실 세계를 그리기를 거부하고 오로지 자기 내면의 눈에만 의존했다. 그는
중립이 없던 시대착오적 천재'였다.
중세의 미술가들처럼 정확한 묘사에 신경을 쓰지 않은 이유는 꿈속의 형상들 하나하나가 갖는 의미가
너무나 중요했기 때문이다. 정확성만의 문제란 그에게 관심 밖이었다.
초현실주의 그룹이 나타나기 훨씬 전 블레이크는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상징들을 그렸다.
<실낙원>과 <욥기>등을 소재로 영적 환상 세계와 인간의 원초적 체험을 구현하고자 했다.
그의 예술의 진가는 백 년 이상이나 지나서야 비로소 인정받게 되었는데, 스티브 잡스뿐 아니라
1960년대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던 미국의 록 그룹 '도어스', 밥 딜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