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규원 Apr 30. 2022

리얼리즘

아름다움이 아니라 진실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이상이 아니라 있는 현실 속에서 진실을 찾는 것이 리얼리즘이다.

진실은 그냥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이해관계를 떠나 사실을 용인하고 사심 없이 진리를 추구할

때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진실은 힘이 있고 영원하다.

서양에서 근대 이후에 주관보다 객관, 시적 명상에 대해 과학과 경험을 중시하는 예술적 개념이

나왔다. 19세기 프랑스에서 고전주의 미술을 숭앙한 아카데미의 정확한 사생과 완벽한 기교,

현학적 주제를 벗어나려는 운동들에 '사실주의'라는 명칭을 부여한 화가는 귀스타브 쿠르베다.

오직 자연의 제자이기를 원했던 그의 성격과 방침은 1600년 경 <의심하는 도마>를 그린

카라바지오와 어느 정도 비슷했다. 그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진실'을 원했다.

<쿠르베 씨 안녕하십니까>라고 제목을 붙인 그림에서 화가는 허름한 차림이지만 당당한 모습으로

전통적인 상투적 수법의 능숙한 조작에 대해 반기를 든 자신을 표현했다. 그는 인습에 타협하지

않았으며 진지하고 성실한 자세로 작업했다. 세계를 본 그대로 전하고 오직 예술적 양심만을

따르도록 고무하는 말을 남겼다.



"나는 털끝만큼도 나의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고, 한순간이라도 나의 양심을 속이지 않고,

 오직 누구를 만족시키거나 보다 쉽게 팔기 위해서는 한치라도 그리지 않으면서 나의 예술로

 밥 먹기를 희망한다네."



그런데 복잡한 사회적 문제와 경제적 평등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는 이념이나 자기주장을 가지고 현실을 보려는 것이 문제다. 특정 계습이나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들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 자신들의 가치체계를 강요하는 독제 권력을 획득한 결과는 자유의 상실이다. 공산당, 파시스트, 나치 등 사회주의의 본질적 속성은 똑같다. 현실을 빙자해

고정된 관념과 의도를 갖고 접근한다면 사실과 진실을 밝힐 수 없다. 어떤 생각을 염두에 두고  

예술행위를 한다면 진실을 희생시키게 된다. 미술의 본질에 대한 물음 속에서 아카데미의 규칙에

따라 사물은 마땅히 이렇게 '보아야 한다'는 선입견을 버린 것인데,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또 다른

틀을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리얼리즘은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변함없이 묵직하게 흘러가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서로 다른 가치체계를 가진 개인들이 지닌 한계와 경쟁 관계 속에서 소통하고 발전하는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인정하는 것이 집단주의를 극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진지하게 고민하고 긴장감을 갖는 자세가 중요하다. 작가는 테크네(표현의 틀)를 가지고

사물과 주제에 접근하게 된다. 결국 자연을 탐구하고 현실을 바라보며 묘사할 때 자신의

고유한 경험과 기억을 포함한 생각을 곁들여 나가는 것이지 절대적인 것은 없다.

대상을 재현하고 현실을 모방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보편적인 감정이다. 화가는 질료에 대한

인식뿐 아니라 형상이나 색채가 주는 풍요로움과 의미를 담아내려고 한다. 그러므로 리얼리즘이란

실재를 표방한다고 해도 사실 그대로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해석과 상상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2022. 명규원作  All I feel like doing is dancing with you.

Love  finds me!



 


매거진의 이전글 한 권의 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