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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규원 Jul 01. 2022

형이상학적인 그림 한 점

<다른 책들> 오르한 파묵

Time is a river the irresistable flow of all created

things.

One thing no sooner comes into view than it is

hurried past

and another takes its place only to be swept away

in turn.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모든 사물은 막을 수 없는 흐름 속에 놓여 있다. 순식간에 그 존재를 잃고 다른 사물에게 자리를 내준다.

우리는 언젠가 사라지기 위해 존재한다. 그래도 흐르는 시간과 순간에 깃든 '영원성'을 만날 수 있을까?

삶의 진실과 기쁨을 맛볼 수 있다면 그래서 행복하다는 충만한 느낌이 든다면 영원과 연결되지 않을까?

영원한 아름다움인 신의 사랑을 깨달을 때도...

나는 아직도 장난감 같은 오래된 벽시계를 본다. 둥근 모양의 시계 문자판은 시간의 조각이 아니라

하루에 대한 전체적인 감을 준다. 오르한 파묵은 '나의 손목시계'에서 시간 그 자체이고 어떤 형태로든

'형이상학적인 것과 관련된 그림 한 점이 떠오른다'라고 표현했다. 디지털시계는 시간의 조각을

숫자로 보여 주기 때문에 전혀 사고 싶지 않다고 한 것이 나와 통했다.

오르한 파묵은 행복해지기 위해 매일 일정량의 문학에 관심을 갖고 사는 작가다. 병든 사람이 삶을 유지

하기 위해 약에 의존하듯이 좋은 '약'(문학)에서 진정성과 힘을 얻는다. 사망한 작가의 밀도 있고 심오한

소설은 그를 행복하게 하지만 매일 반 페이지씩 만족스러운 글을 쓰는 것이 가장 좋은 치료법이고 커다란

행복을 준다고 한다. 그렇게 작업실에 나가서 전투하듯이 글을 쓸 때 손목시계를 풀어놓고 시작해서

대여섯 시간 글을 쓴 후 글이 잘 쓰였을 때 시계를 다시 차는 건 매우 흡족한 일이 된다.

어려서부터 화가 지망생이었던 그는 '영혼에 깃든 불꽃'을 느끼고 모든 것을 포기한 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삶에서 단절된' 사람처럼 고전을 통해 독학으로 소설을 쓰는 젊은 시절을 보내고 유럽의 변방인 터키에서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문명 간의 충돌, 이슬람과 세속화된 민족주의 간의 관계 등을 주제로 한 작품들은 '문화들 간의 충돌과 얽힘을 나타내는 새로운 상징들을 발견했다'라는 평가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와 함께 그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우리를 인도하며 도스토옙스키, 나보코프,

보르헤스, 토마스 베른하르트 등 자신의 문학에 영향을 준 세계를 보여준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의 본질과

문학의 중심부에 접근하는 여정이랄까. 그가 인간적인 경험과 기억을 적절한 단어들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어떻게 가능해졌는지 알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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