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지하 시인을 추모하며
소위 진보적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주의적 이념에 동조한다. 사회주의는 자유주의를
대신하여 진보주의 가치를 내세우고 거짓으로 현혹한다. 그러나 그 실체는 역사적으로 증명했듯이
모든 가능한 가치를 개별 인간에게 두는 자유민주주의와 반대로 개인을 단순한 대리인, 일개 숫자에
불과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공산당의 정치체제에서 개인의 생명은 중요하지
않기에 반대세력은 가차 없이 제거되고 집단학살과 강제 수용소는 필수적으로 뒤따른다.
민주주의는 자유에서 평등을 추구하지만 사회주의는 제약과 예속에서의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런 근본적인 차이를 전혀 구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자본주의’가 사유재산권의 자유로운
처분에 기초한 경쟁 체제를 의미한다면, 이 체제 속에서만 유일하게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과연 진보주의자들은 모든 기득권과 재산도 내놓을 자세가 되어 있는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보여주는 집단주의 행동과 폐해의 밑바탕에 아직도 사회주의 이념이 윤리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실용적 도구이다. 민주주의 자체가 결코 오류에
빠지지 않거나 확실한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나라인 미국도 정치적 올바름을 내세우며 온갖
담론을 만들고 겉모습만 좋게 보이려는 PC좌파, 거대 언론과 빅 테크, 빅 머니, 글로벌리스트 등에 의해
위기에 처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때로는 우리가 경험한 대로 민주 정부라고 하면서 교조주의적인 다수당에 의해 국가를 통제하고 국민을 압제할 수도 있다.
민주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수단으로 작용하지 않는 한, 민주주의는 형식적인 것이고
전체주의 체제 아래서도 지속될 수 있다. 북한도 인민민주주의를 표방한다. 하지만 법이 정한 대로 과정과
절차를 중시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요체이다. 또한 개인의 자유를 가장 높은 정치적 이상으로 삼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개인의 양심과 영혼이 살아있어야 한다. 그래야 진실이 존중되고 거짓과
선동에 넘어가지 않으며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가능하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겨야 시민들의 의식이 깨어나고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지만 물질만능주의로 흐르면 역으로 민주주의가 위협받게 된다. 민주주의와 개인의 영혼은 불가분 한 관계가 있음을 일찍 일깨워준 시인이 우리 곁을 떠났다. 수년간 옥고를 치르며 자신이 당한 극심한 고통을 앙갚음하기보다 용서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결단이었을 것이다.
김 지하 시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삶과 좌우를 떠나 올바른 것을 추구한 그의
정신을 기리고 싶다. 자유와 평화를 추구하며 삶을 밝고 긍정적으로 껴안은 시인의 환한 웃음이
하늘나라에서도 이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