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나태주
그런 밤이면 머언 골짝에서
여우 우는 소리가 들리고
하행선 밤기차를 타고 가끔
서울 친구가 찾아오곤 했다
친구는 저수지 길을 돌아서 왔다고 했다
그런 밤엔 저수지도 은빛
여우 울음소리도 은빛
사람의 마음도 분명 은빛
한 가지였을 것이다
시를 통하여 그려지는 이미지가 공감각적이고 상상력을 자극한다. ‘은빛’이 시각적인 속성뿐 아니라
청각적인 음향 효과를 동시에 부여해 주고 있다. 두 감각을 통한 물질성이 도상적 효과를 배가시킨다.
멀리 서울에서 찬구가 밤기차를 타고 내려오는 것은 마음의 빛을 따라온 자연스런 귀향이고 은빛 나는 저수지를 우회해서 온 것은 은빛 존재들에 대한 외경처럼 보인다. 사람과 둘러싼 모든 것들은 서로를 신성한 은빛으로 품어 안는다.
“어떤 것이 본질을 드러내는 것은, 인간이 내면의
눈을 가지고 꾸준히 들여다볼 때뿐이다.
한 사물에는 순간에 나타나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이
숨겨져 있다는 깨달음, 즉 진정한 본질의 인식은
내면의 연속성에서만 가능하다”
<우리 안의 히틀러>, 막스 피카르트
정보라의 소설집 <저주 토끼>에서 인상 깊은 ‘안녕, 내 사랑’에서 주인공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와
특히 은빛이란 말이 가슴에 남았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 ‘은빛’ 이미지가 흩어지지 않고
한구석을 처지 했다가 엊그제부터 금빛으로 찾아온 보름달과 만났다. 은빛이고 금빛이기도 하는 달의
완벽한 아름다움에 넋을 빼앗겼다. 아름답고 사랑하는 존재들이 있으니 나도 신성한 은빛 노래를
부르고 싶다.
그런데 피카르트가 중요한 결론을 안겨 주었다.
세상 일들이 스쳐 지나가는 것 같고 사물이나 사람들이 나와 연관이 없어지는, 맥락 없는 것이 현대의 특징이라면 진실을 찾고 서로 사랑하는 삶이 필요하다. 그것은 우리에게 절실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
“내면의 진정한 연속성을 만들어 주는 것은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