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신곡>, 지옥편
사람의 인생이란 끝없는 하나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세상에서 자기를 높여주는 행운을 만나면
발이 땅에 닿지 않게 된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사는 가수나 연예인이라면 모를까 사회 지도층이라면 그
부정적 파급력이 크다. 연출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거짓과 선동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무조건 지지하고
숭배할 대상처럼 떠받드는 '떼'를 이루는 팬덤 현상 때문이다.
말의 의미가 무너지면 어떻게 될까? 사실과 거짓을 모호하게 하고 뒤틀어버린 정권이 무너졌다. 그러나
소위 ‘대안적 사실 ‘을 만들어 사실 자체를 바꾸려 한 세력이 있고 조국 사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딸의 입시를 위해 공문서를 위조한 부인과 상관이 없다는 듯이 조국은 법률적 진실 뒤에 가려진 진실들이
복구되어야 한다며 여전히 종교적 광신에 가까운 팬덤 위에 올라서 있다.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 사악한 구렁인 '말레볼제'가 나온다. 형벌의 고통과 신음으로 아수라장인
골짜기마다 죄질이 다른 군상들이 뒤틀리고 엉겨 붙어 발광하는 끔찍한 광경이 펼쳐진다. 애욕, 탐욕,
폭력, 아첨, 시기, 위조, 배반과 태만 등 그 9 개의 지옥 풍경 중 사기꾼과 위조범이 맨 아래쪽 가까이 말레볼제에서 악취 나는 질병(배에 부종이 생겨서)에 시달리고 있다. 기만을 허락하지 않는 정의가 위조자들에게 벌을 주고 있다. 미칠 듯 가려워 손톱으로 제 몸을 할퀴는 사람들은 인간과 짐승을 구별해 주는 '절제'라는 최고의 미덕을 악용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윤리학>에서 7권에서 밝혔듯이 문서나 화폐의 위조는 사회의 근간을 파괴하는 행위로 700년 전 단테가 살았던 시대에도 그 해악의 정도와 범위가 매우 큰 범죄였던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 지배가 노리는 가장 이상적인 대상은 확신에 찬 나치주의자도 공산주의자도
아니다. 사실과 허구 혹은 참과 거짓을 더 이상 분간하지 못하는 일반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
종교를 대신해서 신성한 영역을 찾아 나선 팬덤 현상은 진실 여부를 문제 삼지 않는 무지와 맹목의
산물로서 원시적이고 부족적 성격을 지녔다. 우리는 부족과 집단성을 극복하고 자신의 고유한 관점을
지닌 '개인'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 모두 사실을 확인하고 진실을 찾으며 소중히 여기는 자세를 지녀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 니체가 주장한 대로 '떼'에서 벗어나 사실을 제대로 보고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