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sed Bunny> 정보라
소설집 <저주 토끼>를 읽게 되었다. 문체는 평이하고 사건 전개도 단순한데 좀 기이하다. 등단한 적도 없지만
영국 최고 권위의 세계문학 상인 부커 상 후보에 올랐다는 작품이다. 작가는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박사로
번역서도 여러 권 냈고 소위 SF 장르소설을 써왔다. 무명에 가까웠는데 갑자기 유명해진 작가가 되었다. 신문에서 솔직한 인터뷰 기사가 관심을 끌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탐험하는 '사변 소설' 아니면 '호러'를
쓰게 된 것은 인생이 그렇게 느껴지기 때문이고 원고료를 준다고 해서 SF를 쓰게 된 것이니 사기꾼인 것 같다는 요지였다.
SF는 과학적 사실이나 이론을 바탕으로 만든 문학 또는 매체 장르다. 사실 영화도 그렇고 내가 그리 주목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데 어떻든 작가가 겪은 여러 가지 삶의 경험과 문제의식을 상상과 환영으로 풀어낸
이야기가 사로잡는 힘이 있었다.
대표적인 '저주 토끼'를 비롯해서 '덫'은 사회의 불의와 거짓을 통렬히 전복시키고 악행을 저지르는 자가 받게 된 끔찍한 형벌을 보여 준다. 양심을 저버리고 물질과 성공을 추구하는 행동은 마치 뇌를 갉아먹고 뼈가 부서지고 피 흘리는 것과 같다는 우화라고 할까. 스스로 파멸을 자초하게 되는 무서운 인과응보다!
'머리'에서는 여성의 삶을 배설물을 통해 돌아보게 만든다.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진화에서
배설작용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장기를 제2의 뇌라고 할 정도로 의식하지 못하는 우리의 감정과 기억을 저장하고 있다. 더럽고 지저분한 배설물을 자신과 분리시키고 있지만 냉정하게 보면 인간은 먹고 배설하는 별거 아닌 존재다. 주인공인 그녀가 화장실 변기에서 만난 머리 때문에 변비와 방광염을 겪으며 벌어진 사건과 인생행로가 단순하게 펼쳐진다. 여성이 생산성을 잃고 노화하면서 삶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채 내면에는 구멍이 생기게 되는 과정이 설득력 있다. 어머니라고 부르며 나타난 배설물의 반전이 섬뜩하다. 혐오하고 역겨워하며 버린 것으로 몸을 이루고 수모와 박해를 견딘 머리는 그동안 주인공의 작은 행복까지 망쳐 놓더니 마침내 젊음을 내세워 삶을 빼앗아 누리려 한다.
단편 '안녕, 내 사랑'은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사이보그 반려자 '1호'에 대한 애틋함을 잘 표현하고 있다.
자신의 피조물이고 나를 위한 존재,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한마디로 완전한 '내 것'인 인공 반려자는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주인의 취향과 성정에 가장 알맞게 변하고 성장한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인간은 변하기
어려운 존재다. 사이보그가 인간보다 훨씬 섬세하고 배려가 깊고 참을성이 있다니 이상적인 동반자가 분명하다.
작가가 여성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남성으로 생각하게 되었는데 특정하진 않았고, 번역본에서는 여성(She)이
됐다고 한다. 더 이상 충전되지 않고 작동을 멈춘 1호를 버리지 못하고 옷장 안에 둔 이유가 있다. 오래전 영화에서 남녀 주인공이 처음 사랑에 빠지는 장면과 비극적인 이별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춤추는 장면에서 가슴이
먹먹해졌을 때 삽입된 곡에 맞춰 1호가 춤을 함께 추자고 한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읽고 다가와 준 것에 감동한
나머지 그를 인공'이 아닌 '반려자'로 생각하기 시작했고 그에게 입맞춤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가장 좋아하는
그 노래를 새로 구입한 세스가 부른다. 동기화된 자료를 바탕으로 흥얼거리며 그녀를 안고 가볍게 춤춘다.
시간의 강가에 서서
당신을 위한 은빛 노래를 부른다.
안녕, 내 사랑
안녕, 내 사랑...
당신은 은빛 강물을 따라 흐르고
나는 사라진 과거를 향해 걸어가야지
내 심장은 당신과 함께 강물 속으로
그러니 안녕, 내 사랑
안녕, 내 사랑...
언젠가 먼 훗날 시간의 지평선에서
당신의 은빛 눈물을 닦으며
다시 한번 노래할 수 있을까?
안녕, 내 사랑
안녕, 내 사랑...
그러나 마지막 결말은 낭만적인 사랑의 감정을 배반한다. 나는 가슴에 칼이 찔리고 흘러나온 피는 침대를 적신다. 폐기 위기를 공감한 (인간을 닮은) 기계들은 얼굴에 똑같은 애틋함과 슬픔의 표정을 짓지만 인간과 전혀 다른 존재,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로 변해 있었다.
사실 세상은 카프카가 작품으로 표현한 대로 이질적이고 악몽과 같이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갑작스레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구역질이 나며 사르트르처럼 구토 증세를 보일 수 있다. 작가가 소설을 쓰게 된 것은 이런
비정상적인 세상에 살면서 뭔가 즐거움, 혹은 긴장감과 스릴을 느끼면서 현실을 잠깐이라도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작가는 이젠 구태의연해진 카뮈의 주제인 ‘부조리’를 상기시켜 주는 측면도 있다. 한편 낯설고 기이한 소설 속 세계가 최신판 '전설의 고향'처럼 조금은 익숙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소설 <파친코>上下는 나오자마자 구입해 놓고 다 읽지 못했는데 이 책은 부담 없이 그냥 읽힌다. 작가가 지향하는 세계와 의식이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