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가 될 것인가?

<이야기의 탄생> 윌 스토

by 명규원

이 책은 고전에서부터 현대소설, 영화, TV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야기를

다룬다.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데 스토리텔링이 지닌 힘을 뇌과학과 심리학의 도움을 받아서 밝혀준다.

무엇보다 오래전 내가 인상 깊게 본 영화를 소설로 다시 읽게 된 <남아있는 나날>을 다루어서 관심이

생겼다. 주인공의 성격 유형을 분석하고 작가의 의도를 좀 더 완벽하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대저택의 자부심 강한 집사 스티븐슨은 '감정 절제'를 인간의 미덕이자 품위의 핵심으로 여긴다. 그는

영국인의 자질을 발휘해서 그가 목표한 대로

최고의 집사라는 명예를 얻었다. 과연 그가 인생의 승리자일까?

우리는 세계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거쳐 '세계 모형'(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간다. 문제는 저마다 다른

상황과 경험에 제한이 있다는 것이다. '인지적 왜곡'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그에 따라

개인적인 방식의 결함이 생기게 된다. 우리가 소설 속 주인공에게

공감하고 흥미를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야기가 시작할 때 주인공의 성격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독자는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어떤 사건을 통해 '그는 누구인가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고 이야기가

흐르는 동안 새로운 정보와 함께 '그는 누가 될 것인가'로 결말에 다다르게 된다.

"인물이 어떻게 세계를 통제하는 법을 배웠을까? 예기치 못한 변화가 발생할 때 인물이 혼란스러운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자동적으로 보이는 행동 방침은 무엇일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주인공이 뇌에서 만든 현실에 의문을 품지 않는 그런 세계관을 지닐 수밖에

없고, 어떤 사건으로 어떤 결함 있는 신념이 생겼는지 알게 된다. 왜 그 인물이 그런 행동을 하고 삶의

방식을 지니게 되었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결함 있는 자아를 가진 인물이 더 이상 자신의 통제력이 미치지 않는 상황에 도달하게 될 때 독자는

극적 질문으로 나아간다. 플롯의 극적 사건을 거치면서 환경의 변화는 세계 모형의 결함을 직접

타격하기 때문이다.

"결함을 수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우리가 옳을까? 아니면 사실은 우리의 잘못일까? 이렇게 우리의 정체성을 이루는 심오한 신념이

잘못된 것으로 밝혀지면 대체 우리는 누구일까?"

이야기가 시작할 때 주인공의 성격은 불균형 상태에서 마침내 '완벽한 균형'을 찾아 온전해진다.

플롯의 위기-투쟁-해소의 서사는 문학에서만 쓰이지 않는다. 우리가 행동하고 싸우고 살아가도록

이끌어주기 위해 우리의 뇌는 우리가 더 나은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처럼 사고하기를 바란다고 한다.

통제는 뇌의 궁극적인 사명이다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두려움에 대한 치료법이 바로 이야기다. 뇌는 희망에 찬 목표로 삶을 가득

채우고 그 목표를 성취하게 만들어서 우리가 삶의 냉혹한 진실에 직면하지 않게 해 준다. 이야기는

우리의 존재에 의미가 있다는 착각을 일으켜서 삶의 혹독한 진실을 외면하게도 해준다."


책머리에 저자가 말한 대로 우리는 세계에 대한 이해를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상항에 대처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 그런데 인간의 뇌는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다. 스스로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서

세상을 이해(곡해)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행동한다.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는 관점이 편향과 편견으로

흐르게 되면 생존과 결부되어 쉽게 바뀌지 않는다. 자신이 세상을 통제한다는 느낌을 본능적으로 갖기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상황이 유쾌한 경험이 되는 이유는 익숙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익숙함이 사라지면 스트레스가

생기고 불행해지고 역기능이 생긴다."(Brain and Culture, Bruce Wexler)

우리는 생존을 위한 정상적인 반응으로 우리의 신경 모형을 방어하는 뇌의 반응에 익숙해진 나머지 반대

부분에도 익숙해졌다. 왜 우리에게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싫어하고 혐오감을 느끼는 것인지 잘 알 수 있다.

뇌는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가졌다고 생각할 때까지 인과관계를 포함한 서사를 통해서 세상을 단순하게

만든다. 스스로 판단하기에 맞다면 더 이상 분석이나 판단을 중단한다. 확고한 정치적 신념이 틀렸다고

입증해주는 증거를 접할 때 뇌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신경 과학자 새러 김블 교수가 뇌 스캐너로

관찰한 결과 "뇌에서 일어나는 반응은 숲 속을 거닐다 곰을 만날 때 일어날 법한 반응과 상당히 유사했다."

사람의 생각이 변하기 어려운 이유다. 우리는 머릿속 환각 모형이 정확하다고 우리 자신을 설득하면서

삶을 체계화하므로 일맥상통하는 예술과 미디어와 이야기에서 즐거움을 찾고, 어긋나는 대상은 거슬리고

거리감을 느낀다. 우리가 지키려고 싸우는 신념은 우리의 정체성과 가치관, 통제 이론을 이루는 믿음이기에 신념에 대한 공격은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 자체를 공격하는 셈이 된다.


우리가 현실과 이야기에서 접하는 갈등은 이런 신경 모형을 방어하는 행동, 즉 세계에 대한 지각이 충돌하면

서로 자기가 옳다고 우기면서 상대의 세계 모형을 자신의 모형에 맞추려고 하는 데 있다. 이런 갈등을 통해

주인공은 배우고 변화한다. 소설의 마지막에 스티븐스가 캔턴 양과의 재회에서 사랑 고백을 듣고

"가슴이 미어졌다"라고 인정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전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부분이 나온다. 감정을 절제해서

품위를 지키는 것 이외의 무언가를 드러내면 혼란만 불러올 거라고 여기는 그가 선창가로 간다. 하루의 남은 시간에 전등이 켜지는 행사를 구경하려고 모여있는 사람들 틈에서 마침내 스티븐스는 자기가 달링턴 경을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노예 같은 지위로 인해 주인이 선택한 세계관을 무턱대고 신뢰했다고 하면서

자문한다.

"거기에 무슨 품위가 있나?"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훈훈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놀라면서 그동안 새 주인과 농담을

주고받는 것이 어색했지만 인간의 온기를 느끼는 열쇠가 된다면 수용할 자세로 바뀐다. 변화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불안해하던 스티븐스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고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비록 사랑을 놓쳤지만 스티븐슨처럼 다시 삶의 목표를 선택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다.


이 책을 통해 명심할 것은 우리가 마음이 만든 불완전하고 편향되고 고집스러운 창작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외부 세계를 통제한다고 느끼고 진실이 아닌 것을 믿도록 유도하는 뇌는 과거를 교묘히 조작하면서

스스로를 영웅처럼 만든다. 갈등하고 깨지고 혼란을 겪으면서 회한과 증오에 찬 자아에 사로잡히는 것,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야기의 마법은 현실의 사랑이 범접하지 못할 방식으로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고 위로해준다. 우리가 그렇게 외롭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을 선물하는 것이다.

"스토리텔링 뇌에서 원하는 것은, 그러니까 뇌가 남다른 집중력을 발휘하는 대가로 요구하는 것은 다른

무엇이다."

바로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고 내가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믿는 것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결국

'뭔가가 변화한'이야기다. 변화는 우리가 뇌에서 끝없이 매력적으로 느끼는 현상이다. 더 좋은 쪽으로

변하려는 모든 생명체 이상으로 인간은 더 나은 가치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본성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