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던 소도시에는 서점이 딱 한 군데 있었다. 원래는 몇 곳 더 있었지만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줄줄이 폐업을 하고 이 곳만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서점이 위치한 빌딩은 버스정류장 바로 옆이고 소도시의 가장 번화가였다. 빌딩 계단 아래에는 시골 할머니들이 직접 재배한 채소와 과일을 플라스틱 소쿠리에 담아 팔았다.
한 달에 한 번 나는 그곳에서 잡지를 샀다. 그때는 세씨, 에꼴, 신디더 퍼키 같은 10~20대를 겨냥한 패션 잡지가 호황이던 시절이었다. 매대에 놓인 잡지 한 권을 사서 가방에 담아 오는 날은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렜다. 특히 내가 좋아하던 코너는 서울, 동경, 뉴욕의 스트릿 패션 소개란이었다.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옷차림, 인터뷰에 두근거리는 마음은 지금 생각해보니 가보지 못한 세계,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이었다.
그 달에는 그다지 끌리는 잡지가 없었다. 패션이나 연예인 화보가 너무 많았고, 스트릿 패션이나 일반인 관련 기사가 적었다. 서점 매대를 한참이나 돌고 돌다가 책 한 권을 사서 나왔다. 잡지 에디터가 쓴 에세이었는데 제목도 저자도 지금은 생각나지 않는다. 성공한 중년 여성이 젊은 여성들에게 삶의 노하우 같은 것을 전수해주는 내용이었는데 읽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그녀의 수십가지 노하우 중에 삼십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 노하우가 하나 있는데 그건 운동하라는 것이다. 그것도 라잇 나우. 그녀는 20대의 운동이 20년 후 당신의 삶을 바꿔 놓을 것이라며 바로 지금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하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나는 따뜻한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서 좋은 말씀이라고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 장으로 넘겼다.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하는 삶이라니 강남 한복판에서 검은색 폴라티에 버버리 미니스커트를 받쳐 입고 스트릿 패션란에 얼굴을 내미는 김지은(가명, 22세, 대학생, 강남 거주)양에게나 어울리는 이야기였다.
내 손으로 돈을 벌면서 이제 나도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에는 요가가 유행이었다. 발령받은 시골 마을에 요가 학원 같은 것이 있을리 만무했다. 왕복 1시간씩 버스를 타고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요가를 배웠다. 요가에 대한 내 열정은 산길을 오르내리는 버스에서의 피로를 감당하지 못하고 한 달만에 막을 내렸다.
몇년 후 시내 학교로 옮기고 학교 선생님들과 스쿼시를 배웠다. 2000년대 드라마 남자 주인공들은 개인사에 우환이 있을 때마다 혼자서 그렇게 스쿼시를 쳐댔다. 나도 드라마속 실장님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멋지게 우환을 날려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스쿼시는 자세를 배우는 데만 족히 세 달은 걸리는 운동이었다. 나는 한 달만에 왜 내 자세는 늘지 않는가라는 우환만 가슴 속에 안은 채 스쿼시를 그만뒀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란 후에야 내 자신을 위해 운동을 배울 시간이 생겼다. 이제는 멋져 보이기 위해 운동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운동을 해야했다. 그 옛날 미국 여성이 20대의 운동이 당신의 40대를 바꿔놓을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은 정말 진리였다. 나는 눈 뜨자마자 내 체력과 싸워야 했다. 누군가가 인성은 체력에서 나온다고 하던데 나는 인성쓰레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여러 군데 알아본 끝에 동네 커브스 매장에 등록했다. 30분이면 운동을 끝낼 수 있다니 시간 부족에 시달리는 내게는 솔깃했다. 하지만 누군가(코치님이다) 트레이닝 서킷 안에서 끊임없이 내 자세를 지켜보고 있는 것은 부담스럽기 그지 없었다. 결국 커브스도 안녕. 다음으로 내가 선택한 운동은 필라테스였다. 인터넷에서 예쁜 색의 레깅스와 티셔츠를 사입고 첫 수업을 들었다. 땀은 났지만 이 정도면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목이 잡혔는데 필라테스 수업의 예약 시스템 때문이었다. 수요일마다 한 주치의 수업을 미리 신청해야했고, 내가 듣고 싶은 수업의 인원이 다 차면 울며 겨자먹기로 다른 수업을 신청해야 했다. 대개 남아있는 수업은 보통 난이도 최상이거나 시간대가 맞지 않았다. 남은 회차를 겨우 채우고 근육통과 함께 필라테스와도 바이바이.
이 정도면 운동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이다. 그렇다. 나는 운동을 정말 싫어한다. 운동이란 내 몸과 마음의 상태가 최상 또는 상의 상태일 때 겨우 마음을 내서 할 수 있는 것이고, 내 몸과 마음의 상태가 최상인 날은 일 년 중 50일도 채 될까말까 하다. 하지만 매년 하는 건강검진은 꾸준히 운동을 하지 않으면 5년 내에 고지혈증과 당뇨병이 찾아 올것이라고 내게 경고했다.
내 몸과 마음의 상태가 상이 아니라도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이 무엇일지 나는 아직도 탐색 중이다. 집 앞 공원을 걷기, 주말에는 가까운 산에 오르기, 집 앞 헬스장에서 자전거라도 타기. 아직은 그 무엇도 내 몸에 착 붙는 것은 없다. 하지만 인생에는 그렇게 딱 맞춤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이제 아는 나이가 되었다. 폼은 안 나더라도 스트레칭 밴드라도 발목에 걸고, 동네 공원에서 노젓기 운동기구라도 하다 보면 어제 보다는 낫겠지 하는 마음이다. 내가 동경하던 완전 무결하고 멋진 세상은 없다. 아니면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실패하고, 촌스럽지만 어제보다 조금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발버둥쳐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