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미니멀 라이프

by 봄동

미니멀 라이프를 처음 만난 것은 삶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맥시멈을 찍을 때였다. 왜 나는 너를 만나서, 왜 나를 아프게 하니? 라는 막장 치정극의 주제가는 그 시절 내 인생의 BGM이었다.

미니멀 라이프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에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무심코 쌓아두었던 물건이 목숨을 위협하는 흉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운 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물건을 하나씩 버리기 시작했다. 곤도 마리에라는 정리 전문가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책이 우리나라에 소개되면서 한국에서도 미니멀 라이프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늘어났다. 미니멀 라이프의 유행은 봄바람을 타고 저멀리 한반도 남쪽에 사는 내게까지 불어닥쳤다.

그 시절 한창 유행하던 것이 또 하나 있었는데 유튜브 브이로그였다. 유튜브 브이로그 덕에 나는 내 집에 누워서 제주도, 치앙마이, 뉴욕을 고루 여행하는 호사를 누렸다. 유행과 유행의 만남은 춘향과 이몽룡의 만남처럼 필연일까? 점차 미니멀 라이프 브이로거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덕에 나는 내 집 안방에 누워 치앙마이의 새벽시장이며 뉴욕의 베이글 카페 대신 남의 집 냉장고 속이며 옷장 구경을 고루 했다.

수십 명의 브이로그를 본 결과, 미니멀 라이프 브이로거는 크게 세 부류 정도로 나뉘어졌다.(미니멀 라이프를 가장한 잡상인은 제외하고) 첫째는 극단적인 미니멀 라이프파다. 그들의 집은 정말 휑했다. 식탁 위도, 싱크대도, 거실도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집처럼 삶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식탁이며 싱크대는 대체 뭘로 닦고 머리 고무줄이며 빗같은 것은 어디 있냐고요? 먹다남은 과자는 어디에 두고요? 왜 이런 극단적인 미니멀을 하는 거죠? 따라하지 못하니 이렇게 훼사라도 놓아본다.

두번째는 극소수이긴 하지만 집만 미니멀 한 것이 아니라 삶 자체가 미니멀한 경우다. 이런 경우는 식생활, 의생활, 인간관계 등등 모든 것이 간소하고 소박했다. 소박하고 검박한 삶에 대한 철학이 집에까지 이어진 경우다. 공덕이 높은 스님들의 속인 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쪽 역시 넘사벽이라 모방 불가.

세번째는 꾸준히 물건을 갖다버리는 유형이다. 극단적 미니멀리스트도, 소박하고 간소한 삶이 몸에 배인 이들도 아니지만 하루 한 두개씩 필요없는 물건을 꾸준히 버리면서 집을 비워가는 유형이다. 이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다. 집을 둘러보았다. 쓸모없는 물건들, 안 쓰는 물건들이 많이 보였다. 마침 방학도 되었겠다. 와르르 버리기 시작했다.

옷만 해도 큰 박스 3개가 가득 찼고, 책, 망가진 빨래 건조대, 화분까지 버릴 것들은 차고 넘쳤다. 일주일간의 고투 끝에 박스 3개 분량의 옷, 100여권의 책, 수거비 2만원치의 폐기물 쓰레기를 비워냈다. 정말 신이 나서 미친듯이 버렸다. 목욕탕에서 묵은 때라도 벗겨낸듯 개운하고 시원했다. 깨끗하게 비워낸 베란다가 어찌나 개운했던지 몇번이고 문을 열어보고 또 열어봤다.

하지만 개운함도 잠시, 물건이 떠난 자리에는 또다른 물건이 쌓였다. 책은 또다시 쌓였고, 제 버릇 개 못준다고 환절기면 또다른 옷을 사들였다. 넘쳐나는 물건이 거슬려 버리고 또다시 사들이는게 반복됐다. 그렇게까지 악을 쓰면서까지 버릴 필요는 없었다. 책이 좀 많다고, 옷이 좀 많다고 물건이 좀 많다고 문제될 것은 없었다. 다양한 물건들과 잘 지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었다. 내가 견디지 못했던 것은 물건이 아니라 묵은 인연이었다. 그만 정리하고 싶고, 털어내고 싶은데 내 마음대로 안되는 그런 인연 말이다.

내가 선택한 인연이었다. 그가 나빴던 것도 내가 나빴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잘 안되었다. 잘 해보려고 애를 쓰고, 발버둥을 쳐봐도 잘 안되었다. 그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더 남았는지 이 인연의 끈은 길기도 해서 헤어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누군가의 삶에 한 발 들일 때도, 다른 이를 내 삶에 들일 때도 두 번, 세 번, 네 번 주저하게 된다. 두렵기 때문이다. 더이상 사람과의 인연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나도 누군가의 삶에서, 내 삶에 올 다른 이들과도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되기를, 그저 일상같은 배려 속에서도 조화롭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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