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자꾸 스스로를 고치려는 이유
더 나은 자신이 되고 싶은 인간의 모습은 자연스럽다. 메슬로우의 욕구 위계 이론(1943)에 의하면 인간이 자아를 실현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이다. 나는 인간으로서도 심리학자로서도 자아를 실현하고자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내가 여기서 이야기 하고 싶은 자기개발의 어두운 이면은, '안전'이라는 욕구가 사실 충족되지 않은 사람들의 자기 개발에 해당한다.
내가 미국에서 살면서 관찰한건 미국인들은 '안전'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고 그 중도로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솔직히 진짜 오버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간을 지나 되돌아 보니 한국 사회에 효율성을 안전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였고, 그런 사회에서 자라났기에 나도 안전에 대한 미국인들과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된것이란 걸 알게되었다.
한국사회가 안전보다 효율성을 중요시한다는건 한국인이라면 그렇게 놀랍지 않을것이다. 한강의 기적이 어떻게 이루어졌겠는다. 정말 목숨을 걸고 뼈를 갂는 노력으로 이루어 낸 것이다. 다른 동남아/아프리카 국가들이 한국을 벤치마킹해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려고 하지만 한국이 될 순 없었다.(물론 거기엔 지정학적인 요소도 크다).
내가 여기서 강조해서 말하고 싶은 안전은 신체적 안전이 아니라 정서적 안전이다. Dr. Lena Hoffmann 박사는 자기개발에 치중된 사람을 수년동안 연구해왔다. 그들은 저널을 쓰고, 명상을 하고, 얼음 목욕을 하고, 끝없는 상담을 받았다. 그리고 오랜 연구 끝에 그녀가 낸 결론은 이 사람들이 계속해서 자신으로부터 도망친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조건이 붙은 사랑(conditioned love)에 너무나 익숙해져있었다. 조건화된 사랑은 정서적으로 불안전하다. 이게 쉬운말로 무슨 뜻이냐면 내가 뭔가를 잘해야지 사랑받을 만하다는 생각을 절대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믿는 다는 말이다.
지금 글을 읽는 사람 중에 이게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면, 사실 그 자체가 문제이다. 허준 박사는 한국에서 최초로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을 받은 분인데, 그 분이 유퀴즈에 나와서 자신감을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근거가 있는 자신감은 자신감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 말은 진짜 사실이다! 조건화된 사랑에 익숙해져있는 사람은 자신이 뭔가 하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다고 믿기에 그들은 무슨 짓을 해도 충분하지 못한 인간으로 살게된다.
다시 Dr. Hoffmann의 연구로 돌아와 이야기하자면, 자신을 끝없이 고치려는 사람들은 사실 자신의 상처를 돌볼 생각이 없다. 자신이 상처받은 것이 본인이 못나서라고 끝없이 믿는 사람들이고 그들이 하는 모든 시도는 자신이 고쳐져야한다는 믿을을 강화할 뿐이다. 거칠게 말해, 그들은 어? 내가 오늘 운동을 못갔네. 역시 나는 쓰레기야... 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상처받는 것에서 처절하게 도망치고자 하나, 결국 자기 자신이 스스로의 학대자가 되버린다. 얼마나 슬픈일인가...
자신이 갓생을 살아야지만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이 갓생을 살아서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 이미 괜찮은 사람이라서 갓생을 사는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안믿겠지만! 난 믿는다 왜냐면 난 아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