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의 한국 내신에 대한 생각
열정으로 가득 찼던 내 입시는 그렇게 끝났다.
나는 이상적이면서 현실적인 사람이다.
머릿속으로는 다른 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항상 이상적인 생각을 함께 품고 있었다.
처음 학교에 들어갔을 때, 마음 한편의 알아채지 못했던 기대에 실망해 버렸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특히나 실기 성적을 등수 매겨 게시판에 붙여놓는다는 소문으로 유명한 학교였다. 아니나 다를까 학교를 가자마자 예상치 못한 시험을 치렀고, 실기 실력대로 A, B, C반으로 나뉘었다.
1학년 때는 기본 교과과목 외에, 따로 전공을 선택하지 않고도 한국화, 서양화, 드로잉, 애니메이션, 디자인 수업을 모두 경험할 수 있었다. 수업을 재밌게 수업을 들었지만 내가 기대했던 방식은 아니었다.
특히나, 내가 학교에 들어갔던 때는 코로나 사태로 전면 온라인 방식으로 전환되던 시기였고,
겨우 대면수업으로 진행된 수업도 기대를 너무 많이 했던 터인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유학을 처음 결정했던 시기는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유는 막연하게 ”해외 미대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싶다! “ 였다. 어린 나이의 충동도 있을뿐더러, 깊게 정보를 찾아보지도 않았다.
해외미대와 교육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있었고, 그 모든 곳들이 반짝반짝 빛나 보였다.
희망만으로 가득 찼던 그 기분 좋은 두근거림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 같은 그 느낌과 흥분.
내가 그 감정을 다시 가져볼 수 있을까?
그 며칠 동안 설렘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부터 짧은 지식과 정보를 들이밀며 부모님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오직 이상적인 패기만으로 결정했다고 말해도 할 말이 없는데, 오히려 그 무지가 상상을 현실로 빠르게 이끌어 줬다.
난 부모님을 설득할 때 꽤 애먹은 편이었다.
어린 나이에 캐나다로 간 언니를 지켜보며 걱정스러운 마음이 컸을뿐더러, 막내딸은 마냥 어리고 옆에 두고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견고한 분들이었다.
내가 부모님의 지지를 완전히 이뤄냈던 시기는 유학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던 과정 안에서였다.
내가 유학을 준비하면서 준비한 건 크게 세 가지다.
1. 포트폴리오 (보통 10~13 작품 정도)
2. 내신
3. 영어점수
(+각 학교의 추가적인 프로젝트/에세이)
난 캐나다/미국 대학을 준비한 케이스였다.
먼저 학교 내신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미국 미대는 1,2, 3학년 전체과목 원점수 평균과 내신등급을 반영하고,
캐나다는 3학년 성적( 고등학교 마지막 성적) 만을 반영한다.
한국 학생들이라면 알겠지만, 모든 과목에서 내신과 원점수에서 모두 좋은 점수를 받기는 쉽지 않다. 심지어 50점 이상만 되면 2등급 정도가 나오던 과목이 있을 정도로 내신과 원점수간의 격차가 심했다.
유학을 결심한 후 예고에서 인문계 고등학교로 옮기게 되었고, 두 학교의 극명한 차이를 느꼈다.
처음엔 적응하기 너무 어려웠다. 교우관계도 그렇게 좋지 못했고, 분위기도 너무 달랐다.
부족한 적응이 합쳐져 더욱 성적이 떨어질 때쯤, 하나의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내가 방법이 틀린 게 아닐까? “
첫 번째로 차이를 만들어 준 것은 학교 수업에 대한 내 태도와 마음가짐이었다.
이전에는 이미 닫힌 마음으로 적응하는데 급급했다면, 조금씩 수업시간에 귀를 더 기울이고, 재미를 붙이려고 했다. (수업시간에 배운 학자로 농담을 한다던가…)
물론 모든 수업에 그러진 못했지만, 그때부터 수업시간이 재밌어진 때가 아닐까 싶다.
계획을 훨씬 더 구체적으로 세우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그리고 더욱 꾸준히 공부를 해나갔다.
절대 오르지 않을 것 같았던 성적이 점점 올라가는 걸 실감했을 때, 미술에서 얻지 못하는 또 다른 희열을 느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사회과목에서 처음 1등급을 받았을 때의 그 감정은 아직도 성취감을 목마르게 한다.
유학입시에서는 모든 과목을 반영하기 때문에 체육과목과 같이 비교과 과목들도 모두 챙겨야 했다.
그래서 모든 학교생활에 굉장히 성실하게 임했다.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얻는 몇 가지 생각들이 있었다.
내가 경험했던 바로써, 대부분의 학생들은 보통 자신에게 반영되는 과목만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불필요한 과목시간에는 수업을 듣지 않거나 다른 공부를 한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그 상황이 두드러진다.
선생님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어 암묵적으로 허용해 주는 분위기이다. 사실 체념했다는 말이 더 적합하지만.
이 상황을 학생으로서 뼈저리게 이해한다. 내가 한국 입시를 준비하는 입장이었다면 똑같이 해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해외 입시로 모든 과목을 준비하며 든 생각은,
모든 과목에서 귀중하게 얻어갈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게 수학이던지, 미술이던지, 체육이 던지간에.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입시의 무게에 짓눌려 많은 학생들이 이를 간과한다.
아주 간단한 예시지만, 난 운동신경이 좋은 편은 아니다. 아이들이 손쉽게 수행평가를 통과할 때 유독 C 정도의 낮은 점수를 받아가는 학생이 나였다.
유독 못하는 내가 부끄럽기도 하고, 직접적으로 성적이 반영되어 조급했다.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순 없었지만, 적어도 수업시간 동안은 최선을 다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잘하지 못했다. 사실 완전 꽝이다. 커다란 공을 던질 때에도, 보드를 탈 때에도 항상 실패해 몇 번 욕한 적도 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지는 게 보였다. 항상 최종시험으로 올 때쯤이면, 만점은 아니더라도 좋은 성적을 거두어 갔다. “뭐야, 이제 잘하네!! 항상 마지막 시간 때쯤 되면 잘해. “라는 체육 선생님의 말에 기분 좋은 성취감을 느끼기도 했다.
“부족하더라도 성실하게 꾸준히 연습하면 나아질 수 있다”는 명백하지만 간과하기 쉬운 교훈을 몸소 체감해 다시 마음속에 새겼다.
교과과목에는 교과과목이 주는 지혜가 있듯이, 다른 과목들에는 교과과목이 주지 못하는 귀중한 자산도 틀림없이 있다.
다른 예시로, 아이들이 인원수가 적어 아이들이 기피하는 과목 중에 영어회화 과목이 있었는데, 꼭 들어보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선택했다.
다른 독해 과목과 달리, 리스닝 수업과 이디엄 (관용구)들이 수업에 포함되어 있다. 그때는 억지로 꾸역꾸역 외운 기억이 있지만, 지금 캐나다에 와서 보니 새록새록 기억나는 표현들이 몇 있다. 실제로 몇 개 써먹기도 했고.
꼭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더라도, 현재에 집중해 최대한 얻어갈 수 있는 것들을 흡수하다 보면 언젠가 뜻밖의 방향에서 도움이 되기도 한다.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그 시간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그 외에도 선생님의 시야에서 나오는 생각과 지식, 다양한 분야에서의 경험이
그때 당시엔 “왜 내가 이 모든 걸 다 준비해야 하지? “라며 원망하는 입장이었지만, 그 모든 것들이 내 시야들을 넓혀준 작은 조각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혹시 이 글을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이 본다면, 그리고 아직 성장해 가는 미래의 나에게 꼭 당부하고 싶다.
똑같은 배움은 내 역량에 따라 얻어갈 수 있는 것이 천차만별이기에, 꼭 모든 눈과 귀를 꼭 열어두길.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모든 경험에서 배울 점을 찾으려고 노력하길. 현재에 조건을 걸어 미래의 가능성을 제한하지 않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