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hnnie et Travis Oct 06. 2022

몰입 :

이로써 그 편으로



    최초에 어떤 예감과 이끌림, 그리고 그것이 어떤 ‘소망’으로써 분명해진 순간에 재능 발현에 대한 발을 뗀다. 물론 이 시도는 아직 재능의 증거가 되지 못한다. 잠재력이 기지개를 켰을 뿐이다. 숱한 시도 동안에 나온 결과물은 한동안 잠재력의 범주에서 형편없는 모습을 보인다. 잠재력은 말 그대로 매몰되어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유효성이 없고 심지어는 특정되지도 않는다. 잠재력은 때가 될 때까지, 임계점까지는 그저 없음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 노력들은 재능을 향해 근접하고 있다. 재능과 연결되기 위한 인식적 트임이, 본능적 학습이 진행되고 있다.

    예컨대 자전거 타기를 훈련할 때 탈 수 있게 되는 찰나는 일순이다. 그 순간 직전까지 가능했던 것은 자전거 타기가 아닌 오직 몰입 그 자체다. 자전거를 반절만 탈 수 있다는 개념은 난센스이듯, 자전거 타기에는 ‘탈 수 있음’과 ‘탈 수 없음’ 두 가지의 형태만 있을 뿐이다. 다만 결과가 분리되어 있는 순간에도 이를 우회하는 통합 현상이 바로 ‘몰입’이다. 탈 수 있어도, 탈 수 없어도, 언제나 몰입은 가능하다. 무수한 넘어짐과 재도전의 시간 동안 표면적으로는 줄곧 ‘탈 수 없음’으로써 노출되어 있었지만 내부적으로는 균형에 대한 감이 누적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때가 되자 ‘균형감’은 표면으로 드러나 순식간에 ‘탈 수 있음’으로 전환된다.

 재능의 트임 또한 같은 원리를 따르고 있다. 체득의 발현점에 도달했을 때, 재능은 비로소 최초의 작은 무기로써 내 손에 쥐어진다. 그것은 자신감이자 인내이고, 소신과 개성으로써 출력되며, 이제 주체는 그것을 삶에 적용시킬 수 있게 된다. 이것이 결과로써 주어진 이상주의의 흐름이다. 통증의 제거로써 몰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몰입할 수 있어야 통증이 잠적하듯, 초점을 넓고 깊게, 지엽적인 해결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 자아상을 위한 초점일 것이다.

    무기는 쓰면 쓸수록 무기를 쓴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분명해진다. 반대로 아직 시도되지 않은 순간에조차, 그것은 여전히 잠재력으로 남아있으며 자신의 임계점을 기다리고 있다. 재능으로 확실하게 발현되기 위해서 의심 가득한 없음의 구간을 건널 수 있도록, 출발선에 서기를 기다리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립의 흐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