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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두 개를 더 지나서 아라뱃길이 남단으로 갈라진 지각변동 탓에 뭇 걸음들도 놀라게 하고, 경쾌한 이름도 붙은 굴포천을 만난다. 연안으로는 두리생태공원이 너르게 펼쳐졌는데도 그곳을 관통하지 못한 채 일찌감치 길을 별도로 일으켜 세운 정서진로로 진입하면 어느 순간 굴포천을 넘기는 다리를 건너고 있을 것이다. 피할 수 없이, 다리 위에서 아라뱃길의 모든 지역 중에서 순간 굉음이 난다 싶을 정도로 격하게 굽이치는 지형을 느끼게 될 것이다. 루비콘강의 유혹에 지친 발들처럼 우리 발들도 준비가 되었다 한들, 어떤 결정을 어떻게, 지금 당장, 우리에 의해, 내릴 수 있을까. 시각적으로 착각하길 좋아하는, 은밀하고 나지막하면서도 진실보다 훨씬 깊이 떠오른 상상만이 전부인 우리는 으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자격이 안 되었다. 그러니 가장 민첩했던 별안간의 연상이 시키는 대로 그냥 아마존 강이라고 부르도록 하자. 굴포천 1교는 아마존 유역을 구경하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고.
지도상에서 보자면, 이제 남로에서 가려진 마지막 베일이래 봤자 별 것 없었다. 단숨에 아웃렛에 다다를 것만 같았다. 김포아라대교 뒤에 바짝 붙은 아라육로에서 성공적으로 건널 수 있기만 하다면 말이다. 하지만 강변에는 울타리도 없이 제방을 따라 국화과 — 제멋대로 가늠하기를 — 의 들꽃이 피어 있다. 본능의 암암리에 육체적 피로와 권태가 파고들자, 날렵한 코기토를 꾸역꾸역 밀어 넣는, 흡사 50년대의 아름다운 광경! 이 시골 풍경에 눈길을 조금 더 잡고 있을지 (빚은 또 늘어나고) 아니면 냉정한 초점을 가다듬고 빨리 나아가야 할는지 (빚 청산을 향해). 이에 대한 판단은 우리의 의무적인 관조 바깥에 놓여 있었는데, 왜냐하면 말 잘 듣는 마리오네트의 수동적 관점에서 양쪽 모두 강력하게 촉구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냥 나아갔다. 말하자면 시간이 촉박했다. 다리 위로 올라가기 위해 산책로를 떨구고 산업단지로 들어섰다. 다리의 출발점은 일전에 북로에서 남로로 건넜을 때 경험했던 것처럼 최단 거리를 곡행하는 미로를 따라 힘찬 걸음을 뻗으며 그토록 적절히 조급한 도달이 이루어지도록 예기치 못했던 구역에 놓였던 것이다. 사람 하나 안 보이는 창고 지대에서 아웃렛과 김포공항 어느 쪽과도 관계된 냄새를 동시에 느끼며 구구했던 아라뱃길이 닫히려나보다 싶다. 다소 좁아졌지만 여전히 짙푸르게 빛나는구나. 최동단의 물결을 가린 간살이 얕게 그늘진 턱 아래에 시선이 가건만. 무언이라는 합의에 똑같이 짓밟힌 담배각과 노란 국화가 그 무엇으로부터도 쓸모를 인정받을 리 없이 서로 껴안은 다리를 무심히 건넌다. 언덕 형태가 추구된 교각은 보행을 높이 쳐들었다가 완만히 잠재우면서 그 옆에 인접한 창고 건물들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수직으로, 그리고 우리의 바쁜 전진에 따라 수평으로도 다급히 훑는다. 그러다 다리 끝에 다다라 계단으로 내려갈 준비가 되면 정작 건물들일랑 일절 보이질 않고, 아라뱃길에서 분리된 작은 물줄기가 자연적인 경관을 회복시키며 북동쪽으로 유유히 흐르고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런데 뒤돌기만 해 봐라, 소란스럽게 얽히고설킨 대교들의 복판을 지당히 보여드리지.
아웃렛 건물을 찾은 순간 도착은 선언되었으니, 세 번의 질료적인 경험이 대통합된 아라뱃길은 바야흐로 끝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 집단적인 회상에까지 도달했다. 우리의 쪼개지고 조각나고 분실된 감각을 뒤덮은 실체는 오직 경험 자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섬기는 형상 — 도대체 몇 겹인지 알 수 조차 없는 — 에 의해서 환생했다. 물론 염탐한 본질에 관하여 얼마나 흡족하거나 황홀하든, 그 찰나의 무아지경이 무너져 내리기 직전까지 볼 수 있었던, 모든 것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세속적인 목격자와 세속적인 대상체는 평등하게 선택되었는데, 바로 형상에 의해서, 그렇다면 형상은 선택된 것들의 주체적인, 또는 객체적인 파악 능력에 상응해서 선택 안에 받아들여졌을 것이라. 그런데 이것은 말도 안 되게 수치스러운 정리정돈이다.
아울렛 단지를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탄 우리는, 매우 분별 있게 무너져 내리는 형이상학이 아직은 기억되지 못하도록, 절묘한 타이밍에서 찾아온 졸음의 조력을 승낙했고, 두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