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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nie et Travis Oct 27. 2024

경인아라뱃길

14

  이날, 바람은 불지 않았다.

  마지막 아라뱃길은 치킨버거를 체내 분해시켜야 하는 대사작용의 퇴비장이 될 요량으로, 올해 처음 겪는 더위 속에서 까마득하게 전개되어 있다. 우리는 단번에 여기까지 왔으나 아라뱃길이라는 표제로 종합된 책임이 단숨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웃렛까지, 가장 처음에 만들어놓은 이미지의 자리에 무지와 무책임과 다른 일상이 뛰어들지 않도록 완전히 닿아서, 온몸으로, 땀과 호흡으로, 꾹 눌러 놔야 한다. 걸어야지, 잔재한 저 이미지의 바닥을 긁으러. 동쪽이여 동쪽이여 피처에서 직접 말해 줘야지, 이젠 남로의 머릿구간만 남았다 하니.

  달성에 겹친 오후 3시 아니 4시였던가 그때까지 도착할 수 있을까. 그곳에서 땀을 식히며 거대 자본 시장의 조무래기들에게 급하게나마 치사하게나마 손길을 청할 수 있을까. 만약 거절당하면 도리어 소장품(이라는 형태의 빚) 같은 건 싹둑 잘라서 애초에 온통 사역 경비 생각뿐이었던 양 훌훌 떠나는 거다. 노동의 희열이 꾸준히 벅차오르는 터전으로. 또 한 사람은 둥지에서 한숨 돌리며 묵은 빚이나 갚고.

  전원적인 석조타일 풍의 블록 바닥에 물을 쪽 뺀 반원형 수영장을 허비워 놓고, 흡사 야외 공연장처럼 루프트러스의 날개를 가슴 끝까지 펴놓은 여름 풍경을 지나간다. 물놀이용 기구들 사이에서 막연한 심미성으로 장식되어, 그래도 어쨌든 쳐다보지 않을 수 없는 인조 야자나무는 무인의 이벤트홀에 전무한 사람 그림자에 격분하여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의 남로와 비슷한 길이 이어졌다. 물, 목재 울타리, 블록 깔린 오솔길, 빨간 이차선 자전거로, 그리고 말없이 진지한 나무들. 우리의 마법에 걸린 형제들. 끊기었다 계속 다시 시작되듯 나타났던 그들은 어느덧 완전히 사라졌다. 그늘 한 점 없는 길이었다. 그것은 투박한 원근의 손이 선이란 선은 죄다 단정하게 배열하기 위해 선 위에서 함축된 소재들이라고는 싹 밀어 놓은 살벌하고 광활한 밭고랑을, 아니 그보다는 외진 국도를 연상시켰다. 어린 시절의 의무였던 생활 계획표처럼 부채꼴로 섹션이 분할된 구역마다 색이 들어찼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하늘, 북로의 북측 언덕, 강, 암갈색 각목, 연녹색 블록, 하얀 도로 실선, 붉은 도료가 흡수된 시멘트, 단속적인 노란 중앙선, 남로의 남측 언덕, 다시 하늘. 그중에서도 선명한 풀색의 입체들이 수천 개의 갈고리가 되어 언덕 전반에 매달려 있다. 이제 그 각각은 남은 6월, 쉬지 못할 7월, 그리고 소강하는 8월, 막바지 낙하하는 9월의 일분일초마다 걸고 당기고 눕힐 것이다.

  시간이 지나, 공간 면에서는 지나간 듯한 느낌도 없이, 원근의 선들이 빛 속에서 재배열된다. 그렇네 하고 그냥 바라본다. 이러다 멀어버리지 싶은 눈으로, 자기 앞의 허공에서 소실점까지 역장(Force field)을 재는 포뮬러 원 선수의 섬세한 응시처럼. 짙은 회색의 아스팔트 도로, 두 줄의 노란 선, 전방에 목상교. 가열된 다리 위로 소리 없이 변형되는 앵포르멜의 뭉치들이 새하얗고 포근하게 솟아 있다. 상승 중인 비둘기색 비행기 한 대를 어둡고 편평한 뭉게구름 밑면에서 놓쳤다가 통통하게 부어올라 일종의 광학적인 탐욕에 빠져든 하얀 부분에서 적발한다. 이 다리를 아라뱃길 첫 번째에서 반대 방향으로 지나치던 게 생각난다. 거의 유일한 음지, 다리의 비좁은 그늘 아래서 일어난 일. 집에서 챙겨 온 바람에 치킨버거에 보태졌다가 조금 남게 되었던 방울토마토와 고다치즈가 여기서 끝장난다.

  추억의 고드름과 진배없는 얼음과자를 사서 입 안에 한두 덩어리씩, 얼마 후에는 서너 덩어리씩 물고 빤다. 혀가 얼어붙어 마비되는 듯한 느낌이 지긋이 강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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