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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은 만남으로부터 생성된 의미를 끊어내는 작업이다. 아니다. 떠남은 삶에 새로 덧입혀진 다중창의 일부라고 분명코 상술했다. 우리는 혼란의 허무한 마지막을, 또는 허무의 혼란스러운 마지막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알다시피 그날의 마지막은 다른 날의 처음으로 보내진 한 통의 편지가 되었다. 편지 봉투를 열어보기 전까지 이야기는 멈춰있고, 단지 비통함만이 감각되어, 이미 존재하지 않은 것에 무의미를 합성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아낄 것 없이 봉투를 연다면.
아라뱃길의 두 번째에서는 임시방편으로 역시나 주머니가 하나뿐이지만 오랫동안 함께 해 온 검은색 '표정 있는' 배낭을 메었다. 세 번째에서는 새로 고용된 직원이, 삶의 곳곳에서 따로따로 조우한 우리의 소지품들이 갑자기 같은 비밀을 공유하게 된 차원에서 어찌 보면 첫 직원 채용이라고 논할 수 있게 만든 뉴페이스가, 여름에 잘 어울리는 방추형 조롱박 모양으로, 스탠리 물병이 큼지막한 앞 포켓에 탄환처럼 재어져, 모자가 언제라도 걸릴 카라비너를 어깨끈에 끼우고, 모자를 잃은 이후 오늘날 더없이 괜찮은 주인의 등에 붙어 있었다. 다시금 새파랗게 연관 지어진 하늘과 물로부터 본격적인 만남이 자라난다. 아라뱃길과의 만남, 세 번째와의 만남, 볕이 지독해져 모자를 벗을 일이 있을까 흐뭇하게 빈정거리는 만남, 스물일곱 번째로 맞이한 6월의 만남, 뭐 어떻게 해석해도 좋다.
최초의 출발을 항하여, 오늘의 마지막으로써 되돌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