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가계부 실천후기 #육아 #전업주부외로움#자존감#쇼핑멈춤
분류기호: 374 (교육학 - 평생교육 및 성인교육)
15kg 감량에 성공하고 체중계에 49.9kg이 찍히던 날, 제 자존감은 말 그대로 하늘을 찔렀습니다.
'목표를 세우고 지독하게 밀어붙였더니 진짜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주는 쾌감은 에스프레소 머신보다 더 달콤하고 강력했지요. 내친김에 이 짜릿한 도파민을 다시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미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한자, 그리고 한국사로의 이탈
그렇게 눈에 띈 것이 바로 '한자능력검정시험'이었습니다.
2009년 8월 8일 오후 3시, 경기대학교 고사장에서 3급 시험을 보던 60분 동안 남편과 아들은 캠퍼스를 거닐며 저를 기다려주었어요. 시험을 마치고 교실문을 나설 때 저를 향해 와다다 달려오던 아들의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 훈장 같은 기억입니다.
결과는 가뿐히 합격. 기세를 몰아 2급, 1급까지 도장 깨기를 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버스 광고판에서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라는 글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가슴이 뛰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역사를 무척 좋아해서, 대학 원서를 쓸 때 사학과를 가지 않은 것을 내내 후회하던 참이었거든요. 한자 2급은 쿨하게 미뤄두고, 곧바로 제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과정에 접수했습니다.
머리가 새하얘진 고사장에서
2009년 10월 24일, 충암고등학교 고사장. 이번엔 오전 10시 시험이라 남편과 아들의 호위 없이 홀로 결전에 임했습니다.
시험지를 받아 든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습니다. '내가 그동안 뭘 공부한 거지?' 싶을 정도로 문제가 너무 어려웠거든요. 70점 이상이면 1급, 60점 이상이면 2급이었는데, 채점을 하면서 2급조차 자신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간신히 턱걸이로 2급에 합격했지만, 스스로에게 몹시 실망하며 한국사 책을 덮었어요.
그로부터 5년 뒤인 2014년,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아들에게 한국사를 가르치기 위해 다시 시험(25회)에 응시했습니다. 이번엔 1개를 틀려 98점으로 1급을 여유 있게 땄습니다. 7회 때와 비교하면 초등학생 시험 수준처럼 느껴질 정도였죠.
그리고 우연히 검색을 하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역대 최저 합격률 순위]
1위: 제10회 (합격률 약 4.5%) - 전공자도 울고 간 극악의 난이도
2위: 제7회 (합격률 약 5.2%) - 초유의 불합격 사태를 초래한 2009년 시험
3위: 제13회 (합격률 약 23.8%)
제가 멘붕 속에서 시험을 봤던 그 '제7회 시험'이, 한국사 시험 역사상 두 번째로 합격률이 낮았던 이른바 '전공자도 곡소리 나는 극악의 불시험'이었던 겁니다.
두 달 남짓 독학해서 그 시험의 2급을 따냈다니. 스스로에게 실망했던 과거의 저를 꽉 안아주고 싶을 만큼 자랑스러웠습니다.
그 후 2016년에는 중앙일보 주최 '제1회 세계사능력검정시험'에서도 96점으로 1급을 따냈습니다.
장학금으로 산 빈폴 핸드백
공부의 끈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2010년, 훗날 독서·논술 지도사로 다시 일할 때를 대비해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3학년으로 편입했어요. 목표는 아주 명확했습니다.
'장학금을 타서 가방을 사는 것.'
학점 3.0만 넘으면 장학금(약 25만 원)이 나왔는데, 3학년 1학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기준을 훌쩍 넘겼습니다. 첫 장학금을 타던 날, 벼르고 벼르던 빈폴 핸드백을 스스로에게 선물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습니다. 졸업논문 자료를 찾으러 여섯 살 아들의 손을 잡고 마포평생학습관까지 원정을 갔던 날. 아이를 곁에 두고 도서관 서가를 누비며 자료를 찾던 그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멋진 엄마' 그 자체였던 것 같아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사실, 저는 몹시 외로웠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이렇게 미친 듯이 공부와 자격증에 매달렸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몹시 외로웠습니다.
아들이 병설 유치원에 가기 전까지 5년 동안, 저는 친구들을 거의 만나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은 다들 아파트에 살고 자동차도 있었는데, 13평짜리 다가구주택에 사는 뚜벅이 엄마라는 사실이 자꾸만 저를 초라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들을 어린이집에도 보내지 않고 끼고 있었으니 누굴 만날 시간조차 없었죠.
가장 빛나야 할 30대 초반의 5년. 엄마로서는 최고의 나날이었지만, 그냥 '나'로서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혼자 걷고 있는 외로운 5년이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만나는 대신 도서관과 육아서로 도망쳤습니다. 외로움을 잊기 위해, 초라함을 들키지 않기 위해 미친 듯이 공부하고 아이에게만 집중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제 인생 최고의 투자이자 가장 확실한 성취의 밑거름이 되었지만요.
만약 카톡과 인스타, 유튜브로 24시간 남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지금 시대였다면? 아마 저 역시 그 지독한 비교의 늪에서 허우적대느라 이렇게까지 버티지는 못했을 겁니다.
공부는 샐러드였습니다
언젠가 어떤 책에서 이런 유머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샐러드가 우리 몸에 유익한 진짜 이유는, 그걸 씹어 먹는 동안에는 몸에 해로운 햄버거나 피자를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제가 딱 그랬습니다.
공부하는 시간 동안에는 쓸데없는 비교나 우울한 잡생각을 할 수 없었습니다. 식탁에 앉아 공부하는 동안에는 돈을 쓸 일도, 홈쇼핑을 보며 쇼핑을 할 시간도 없었죠.
외로움을 견디려 억지로 씹어 먹었던 '공부'라는 샐러드가, 결국 제 그릇을 키우고 통장을 불려준 가장 건강한 영양분이었던 셈입니다.
공부든, 다이어트든, 가계부든 진리는 하나로 통합니다.
그 지루하고 고독한 시간을 묵묵히 씹어 넘기다 보면, 결과는 늘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
오늘도 저는, 묵묵히 저만의 샐러드를 먹습니다.
[결핍] 경제적 위축 및 육아로 인한 사회적 고립 (외로움)
[대체 행동] 돈이 들지 않는 도서관 활용 및 자격증/방통대 공부
[1차 보상] 합격이라는 객관적 성취 및 장학금 획득 (도파민 분비)
[2차 보상] 공부하는 시간 동안 소비 욕구 차단 (쇼핑 대체)
[결과] 통장 잔고 증가 및 '멋진 엄마/나'로서의 자존감 확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