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가계부 실전후기 #(꽁)돈이야기 #(미국)펀드# 재테크#투자실패
327.8 (경제학 - 개인금융 및 투자) / 595 (생활과학 - 가계 관리)
24년 치 가계부를 뒤적이다 2012년 8월에서 믿을 수 없는 항목을 발견했습니다.
펀드 잃은 돈 –488,747원
"내가 2016년 전에도 펀드를 한 적이 있었나?"
깜짝 놀라 서랍을 다 뒤집어 보니, 2006년 7월 아들 이름으로 가입했던 '미래에셋 우리아이 3억 만들기' 펀드 통장이 나왔습니다. 아들이 태어날 무렵 대한민국 엄마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바로 그 상품이었죠.
남편이 주식을 하겠다고 덤볐을 때 "주식 책 100권 읽기 전엔 안 된다"며 67권에서 포기하게 만들었던 제가, 정작 제 손으로 펀드에 가입하고 원금까지 까먹고 있었다니. 너무 아픈 기억이라 무의식 중에 봉인해 버렸던 걸까요.
궁금한 마음에 지금 그 펀드를 찾아보았습니다. 세상에, 이 펀드는 2026년 현재까지도 수천억 원 규모를 유지하며 활발하게 운용 중인 '국내 최장수 어린이 펀드'로 살아남아 있었습니다. 그때 해지하지 않고 그냥 묻어두었더라면, 꽤 쏠쏠한 수익을 안겨주었겠네요.
하지만 이 48만 원의 손실은, 훗날 제가 겪게 될 진짜 '투자 참사'에 비하면 예고편에 불과했습니다.
찬란한 여름날, 소리도 못 내고 울었습니다
제 인생의 본격적인 투자 이야기는, 너무나도 슬프고 갑작스러운 이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2016년 8월 17일.
저희 가족은 여름휴가로 김해 롯데워터파크에 있었습니다. 신나게 물놀이를 마치고 탈의실에서 휴대폰을 확인한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습니다. 부재중 전화만 10통이 넘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빠가 쓰러지셨고 아직 의식이 없다는 소식. 그리고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두 번째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어떻게 옷을 주워 입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남자 탈의실 앞에서 남편과 아들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쪼그려 앉아 울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워터파크, 모두가 웃고 소리치며 행복해하는 그 찬란한 여름날의 한가운데서, 저는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숨죽여 울고만 있었습니다.
VIP 룸의 달콤한 착각
장례를 치르고 나자, 제 통장에는 아빠가 남기신 유산 1억 5천만 원이 들어왔습니다.
아빠는 모든 재산을 씨티은행에 맡겨두셨더군요. 평생 빚을 멀리하시고 오로지 예적금이 최고라고 하시던 아빠가 '펀드'를 하셨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유산을 상속받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아빠의 담당 PB(프라이빗 뱅커)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저에게도 펀드와 보험을 권유했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평소 같으면 가계부를 보며 고민하고 의심하며 따져봤을 제가, "아빠도 하셨으니까"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덜컥 PB가 시키는 대로 서명을 하고 있었습니다.
서울역사박물관 건너편 씨티은행 광화문 지점. 1층 창구가 아니라 2층으로 올라가면, 호텔 안내 데스크 같은 곳에서 직원의 안내를 받아 프라이빗한 방으로 들어갑니다. 고급스러운 메뉴판에서 음료를 고르고 나면 담당 PB가 들어와 투자 브리핑을 해주죠. 무언가에 가입하면 두 명의 직원이 깍듯이 인사를 하고, 두툼한 증서 뭉치를 안겨주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처음엔 그 대우가 무척 좋았습니다. 마치 제가 진짜 '부잣집 사모님'이라도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졌으니까요.
PB가 바뀌고, 상담이 수다방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달콤한 착각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10월 무렵, 실적이 좋았던 담당 PB가 청담 지점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청담까지 쫓아가겠다고 했지만 은행 정책상 불가능하다며, "저만큼 잘하는 분을 붙여드리겠다"는 약속만 남기고 떠났습니다.
새로 배정된 PB를 만나는 순간, 눈을 의심했습니다. 전임 PB 옆에서 서류 심부름을 하던 분이었거든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빠는 5억 원을 맡긴 VIP였지만 저는 고작 1억 5천만 원짜리 고객이었으니, 굳이 에이스급 직원이 저를 맡을 이유가 없었던 겁니다.
새 PB는 신뢰도 제로였습니다. "이번 달 카드값이 터졌다", "제가 계산이 좀 느리다"며 셀프 디스를 하질 않나, 제게 자기 딸과 동갑인 4학년 아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투자 상담이 아니라 '학부모 수다방'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아들이 수학학원 안 다니고 아빠랑만 공부한다고요? 어머니, 그러다 중학교 가면 폭망 해요."
훈수를 두던 그녀는 제 아들이 교육청 영재원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자 태세를 전환하더군요. 그때부터는 무슨 문제집을 푸느냐, 어떻게 공부시키느냐며 저를 취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을왕리 이디야에서 내린 결단
투자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2017년 크리스마스.
을왕리 해수욕장 앞 이디야 커피숍에서 남편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펀드를 해지하고 싶은데 PB가 하도 말려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요. 유산에 대해 한 번도 묻지 않던 남편이 툭 던졌습니다.
"너 그러다 브라질 펀드 꼴 난다~ 그냥 폰으로 해지해버려!"
저는 남편이 대단한 투자 정보를 알고 조언한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물어보니, 그냥 제가 너무 괴로워하길래 아무 말이나 던진 거라더군요.
어쨌든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저는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 버튼을 눌러 모든 펀드를 해지해 버렸습니다.
해지 버튼을 누른 대가는 쓰라렸습니다. 원금에서 약 600만 원의 손실이 확정되었습니다. 사실 그 당시 미국 펀드였고, 그 후 미국 경기는 완전 상승장이었으니 말린 PB의 말이 옳았습니다. 괜히 제가 매일 수익률을 들여다보며 '셀프'고통받고 있었던 것이지요.
꽁돈의 무게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신혼 초 1,500만 원 빚 때문에 밤잠을 설치던 제가, 600원짜리 새우깡이 아까워 3시간을 고민하던 제가[3화 참고], 무려 600만 원을 허공에 날렸습니다.
자칭 '기록과 보관의 달인'인 제가 그 당시 가입했던 펀드들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모든 서류를 찢어버린 걸 보면, 그때 제가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 쓰라린 실패를 통해 가계부 14년 차에도 깨닫지 못했던 거대한 진리를 배웠습니다.
"내 피, 땀, 눈물이 섞이지 않은 돈은 허망하게 사라진다."
아빠가 남겨주신 1억 5천만 원. 비록 아빠의 땀방울이 서린 돈이었지만, 제게는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꽁돈'이었습니다. 내 노동이 들어가지 않았기에 그 무거움을 알지 못했고, 알지 못하니 허술하게 관리하다 어이없이 잃어버린 것입니다.
가계부에 10원짜리 하나 적는 것엔 그렇게 목숨을 걸었으면서, 남이 굴려주는 수천만 원짜리 투자판에는 맹목적으로 서명했던 저의 무지함을 뼈저리게 반성했습니다.
새옹지마...
모든 인생이 새옹지마이듯, 이 600만 원짜리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하지 않았더라면 10년 뒤 '내 집'과 금융자산 10억이라는 성과를 얻지 못했을 겁니다.
아픔 없는 성장은 없으니까요.
P.S.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신혼 초 1,500만 원을 대출받은 은행도 씨티은행이었고, 아빠의 유산 1억 5천만 원이 처음 들어온 곳도 씨티은행이었습니다. 대출자에서 투자자로. 인생역전이라고 해야 할까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