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가계부는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24년 가계부 실전후기 #가계부 #대출상환 #현실재테크

by 두번째지니

[1화] 도서관이 싫어서 도망쳤는데, 도착하니 도서관이었다


분류기호: 020.99 (문헌정보학 - 전기 및 자서전)


대한민국 대학수학능력시험 2회 세대. 수능 성적표를 받아 든 95학번인 제가 갈 수 있는 대학은 딱 두 곳이었습니다. 상명여대(당시는 여대였죠) 문헌정보학과, 아니면 덕성여대 도서관학과.


아빠는 언니가 다니는 덕성여대로 가길 원하셨습니다. 언니가 산업미술학과 92학번으로 재학 중이었는데, 자매가 같이 다니면 등록금을 10~30%나 할인해 준다는 게 이유였죠. 하지만 저는 죽어도 싫었습니다. 언니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것도 싫었지만, 무엇보다 '도서관'이라는 이름이 너무 따분하게 느껴졌거든요.


"문헌정보학과? 이름이 뭔가 세련됐잖아. 여기다!"


저는 도서관학과를 피했다는 안도감에 상명여대를 지원했고, 합격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등교한 첫 수업 시간. 교수님의 첫마디가 제 뒤통수를 쳤습니다.

"우리 문헌정보학과는 말이죠, 예전의 '도서관학과'입니다."

순간 저는 강의실을 두리번거렸습니다. 저처럼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가 또 없는지 찾으려고요.

점수에 맞춰 지원한 대가치고는 꽤나 아픈, 정통으로 맞은 팩트 폭격이었죠.


비록 시작은 오해였지만, 공부하는 동안 저는 도서관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무사히 정사서 2급 자격증도 땄지요.(졸업하면 받는 거지만요ㅎ)

하지만 제가 졸업하던 1999년 2월은 남한판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던 IMF 시대였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95학번들은 정부 지원 인턴사원으로 취업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공기업 자료실에 채용되었지만, 이름만 사서였지 실상은 잡다한 사무보조에 불과했습니다. 사서로서의 꿈을 펼칠 기회는 없었죠. 결국 2년 만에 퇴사하고 취업 준비생으로 지내다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2002년 4월 5일. 결혼과 동시에 제 인생은 난생처음 겪는 '숫자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남편은 LG텔레콤(현 LG유플러스)이라는 번듯한 대기업 2년 차 사원이었고, 앞으로 잘 벌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현실 감각이었습니다. 은행은 돈을 맡기는 곳인 줄만 알았지, 개인이 돈을 빌릴 수 있는 곳이라고는 꿈에도 몰랐던 저에게 '대출'이라는 현실이 닥친 겁니다.


신혼 전셋집 보증금 3,500만 원. 그중 2,000만 원은 천만다행으로 때마침 남편 회사에서 나온 우리사주를 팔아 마련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남은 1,500만 원은 오롯이 대출로 채워야 했죠.

누군가에겐 적은 돈일지 몰라도, 평생 빚이라곤 지고 살아본 적 없는 저에게 그 1,500만 원은 마치 15억 원만큼이나 무겁고 무서운 숫자였습니다.


"이 빚을 다 갚기 전엔 아이도 낳지 않겠어."


비장한 각오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한우리 독서지도사'로 일을 시작했지만, 기본급 50만 원에 아이 한 명당 2만 원... 한 달 월급이 100만 원을 넘기기 힘들었습니다.


2002년 봄부터, 빚을 모두 갚은 2004년 10월 14일까지. 그 2년 반의 시간은 저에게 진짜 '고난의 행군'이었습니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10원 하나에 벌벌 떨던 시절이었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그 절박함이 없었다면 저는 '기록하는 사람'이 되지 못했을 겁니다.

불안해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잊지 않기 위해 적었습니다.

그렇게 제 인생의 첫 번째 가계부가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레몬트리 잡지 부록으로 받은 인생 첫 가계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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