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가계부 실전후기 #양지가계부 #자산관리 #대출상환 #가계부쓰는법
분류기호: 595 (생활과학 - 가계 관리) / 327.8 (경제학 - 금융투자 , 개인재무관리)
결혼 준비가 한창이던 2002년, 서점가에는 ‘레몬트리’라는 잡지가 유행이었어요. 잡지를 사면 예쁜 피크닉 가방이나 그릇 같은 부록을 얹어주곤 했는데, 당시 예비 신부였던 제 눈을 사로잡은 건 다름 아닌 ‘가계부’였습니다. 저의 24년 가계부 대장정은 그렇게 우연히, 잡지 부록으로 시작되었답니다.
첫 기록은 4월 12일이에요. 4월 5일 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다녀온 직후부터 펜을 들었나 봅니다.
펼쳐진 첫 페이지 속 과거의 제 모습은 꽤 충격적입니다.
“택시비 1,600원.”
지금 돈으로 환산해도 크지 않은 금액이지만, 그 시절 가난한 신혼부부에게 택시라니요. 도대체 무슨 급한 일이 있었던 걸까요? 그 아래로는 이마트 장보기 12만 원, 점심값 2만 7천 원 같은 내역들이 이어집니다.
(유추해 보면 이마트에서 들고 걸어오기 힘든 무언가를 산 것 같아요. 이마트와 저희 집 거리는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거든요)
5월이 되자 ‘이마트’라고 뭉뚱그려 적던 항목이 ‘쌀 10kg 24,800원’처럼 구체적으로 변해갔어요.
하지만 그때는 그저 적는 행위에만 몰두했던 것 같아요. 한 달 생활비 규모조차 가늠되지 않던 때라 예산이나 계획은 꿈도 꾸지 못했죠.
가계부의 핵심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일주일 단위로 지출을 복기하며 전략을 짜는 것임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거든요.
저를 진짜 ‘가계부 쓰는 사람’으로 만든 건 1,500만 원의 빚이었어요.
남편 회사와 연계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매달 478,213원씩 원리금을 갚아나가고 있었죠. 1년쯤 지났을까요? 원금이 줄었으니 당연히 내야 할 돈도 줄어야 하는데 오히려 청구 금액이 오른 거예요. 은행에 따져 물으니 금리가 올라 어쩔 수 없다는 차가운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저는 즉시 다른 은행들을 뒤졌어요. 갈아타는 것이 이득이라는 계산이 서자마자 은행에 전화를 걸어 "대출금을 전액 상환하겠다"라고 통보했죠. 그제야 은행은 태도를 바꾸더군요. 타 은행 금리에 맞춰주겠다며 붙잡았고, 그렇게 조정된 월 상환액은 477,536원이었습니다.
겨우 677원.
고작 677원을 덜 내게 되었을 뿐이지만, 그날의 깨달음은 수백만 원 이상의 가치였어요.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내 돈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 금리 0.1%를 지키기 위해선 내가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으니까요.
“은행은 공휴일에도 쉬지 않는다.”
아빠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신 말씀이었어요. 빚을 지면 휴일에도 이자가 붙으니 절대 빚지고 살지 말라는 가르침이었죠. 아이러니하게도 그 가르침을 너무 잘 따른 탓에, 레버리지를 활용해 집을 사야 했던 결정적 시기를 놓치고 말았지만요.
은행 금리보다 집값이 훨씬 가파르게 오르는 시대를, 아빠 시대의 방식대로만 살았던 탓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후회만 남은 건 아니에요. 2004년 10월 14일, 중도상환수수료가 없어지는 날에 맞춰 남은 빚 471만 원을 일시 상환했을 때의 짜릿함은 가계부에 ‘완납!’이라는 글씨와 함께 선명히 남아 있거든요.
2005년까지는 레몬트리 부록을(일 년에 한 번 가계부를 줄 때만 잡지를 구입했지요), 2006년에는 아들의 태아보험 가입 사은품으로 받은 교보생명 가계부를 썼어요. 2007년에는 어디서 났는지 기억조차 희미한 정체불명의 가계부에 기록을 이어갔고, 2008년부터는 드디어 직접 구입한 ‘양지 가계부’에 정착했습니다.
공짜 부록을 찾아 쓰던 제가 이제는 혹시라도 단종될까 봐 미리 세 권씩 쟁여두는 사람이 되었네요.
금리가 뭔지, 그게 변할 수도 있는지도 몰랐던 새댁은 그렇게 24년의 세월을 건너, 숫자로 인생을 기록하는 기록가가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