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가계부는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24년 가계부 실전후기 #육아서 #독서육아 #교육비 #사교육 #양육태도

by 두번째지니

[4화] 지름신이 오셨다? 아니요, 인생 최고의 ‘투자’였습니다


분류기호: 598.1 (생활과학 - 아동양육) / 375.1 (교육학 - 유아교육)


1,500만 원의 빚을 갚기 위해 저 역시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당시 제가 선택한 일은 ‘한우리 독서지도사’였어요. 한우리 은평지부로 출근하여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기본급 50만 원에 아이 한 명당 2만 원을 더 받는 조건이었죠.


유치부부터 초등 3학년까지. 1:1 수업은 그나마 할 만했지만, 4명씩 묶인 그룹 수업은 그야말로 전쟁터였습니다. 아직 아이를 낳아보지도 못한 스물여덟의 저는 매일 아침 출근길 10분을 걸으며 빌었습니다.

'제발 무슨 일이라도 터져서 오늘만 안 갔으면.'


남편에게는 "빚 때문에 그만둘 수도 없고, 그냥 지부장님이 나 좀 잘라줬으면 좋겠어"라고 하소연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기억 속에선 3년은 족히 고생한 것 같은데, 가계부를 다시 펼쳐보니 딱 20개월이더군요. 힘든 기억은 시간을 부풀립니다. (전역하신 모든 군인 분들,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제 아들도 곧 '3년 같은 18개월'을 보내겠지요.)


1,500만 원의 빚을 다 갚고, 2004년 10월부터는 한우리 논술지도사 과정을 들었습니다. 임신 계획을 앞두고 자격증을 미리 따두자는 생각이었는데, 사실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내 아이를 키울 때 반드시 쓸모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독서지도사로 일하게 될 때 유리하겠지.'


그 무렵 남편이 주식 투자를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제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투자 관련 책 100권 읽고 나서 시작해."

기세 좋게 덤볐던 남편은 67권쯤에서 두 손을 들었습니다. 공부할 게 너무 많고 시간도 없다면서 포기했죠.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 버는 주식도 100권인데, 사람을 키우는 육아는 오죽할까.

태교 기간 동안 육아서를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06년 2월, 드디어 나의 보물, 아들을 품에 안았습니다.


2008년까지 구입해서 읽은 육아서가 약 100권(남편회사에서 받은 도서구입비가 있어서 가능했지요),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육아서가 약 150권까지 합치면 거의 250권. 육아가 힘들 때마다 책을 읽었고, 책에 나온 대로 실천한 날은 스스로를 칭찬하며 버텼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 가계부를 펼치면, 기절할 만한 항목이 하나 등장합니다.


2007년 교육비: 9,952,150원

기저귀, 장난감 같은 아기용품도 포함된 금액이지만, 대부분은 몬테소리·프뢰벨 같은 고가 유아 교구와 그림책 전집이었습니다.

600원 새우깡 앞에서 햄릿처럼 고뇌하던 짠순이가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태교 중 읽은 《0세 교육의 비밀》에서 시키는 대로, 빚을 갚으며 키운 독기로 모은 돈을 아들의 뇌 구조가 형성되는 그 시기에 전액 베팅했습니다. 그 돈은 남편의 보너스가 아니었습니다. 처녀 시절 입던 바지 단추를 옆으로 옮겨 달아 입으며 내 옷값을 없앴고, 가계부를 10원 단위로 쥐어짜 긁어모은 돈을 오직 '교육비'라는 하나의 바구니에 몰아넣었습니다.

88만원, 49만원, 59만원, 52만원......지금봐도 남편이 경악할만하네요;;

수십만 원짜리 교구를 볼 때마다 경악하는 남편에게 저는 큰소리쳤습니다.

"지금 이렇게 투자하면, 아들이 고등학교 땐 돈이 거의 안 들게 해 줄게!"


몬테소리 교구 방문판매원과의 대화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분이 "몬테소리의 교육 이념은 우주 평화"라고 하시길래 제가 받아쳤습니다. "교구 가격이 이렇게 사악해서야 우주 평화가 오겠어요?"

당황하셨는지 곤충 카드를 꺼내며 물으셨습니다. "어머니, 아이가 개미 카드를 보고 '거미'라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육아서 100권의 내공으로 즉답했습니다. "얼른 거미 카드를 찾아서 보여줘야죠. 아이의 말을 부정하지 않고, 비교해서 스스로 깨닫게."


본전을 뽑으려는 집요함이 진짜 비결이었습니다

비싼 교구들을 거실에 모셔두는 것으로 끝내지 않았습니다.

가계부를 쓰는 사람 특유의 집요함으로, 저는 그 교구들의 활용법을 완벽하게 마스터해야 했습니다.

그게 250권의 육아서를 파고들게 만든 진짜 동력이었습니다.


그 투자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아들은 초3부터 중1까지 서울시서부교육청 수학영재원에 합격했고, 중2~3 때는 한성과학고 수학영재원에서 상까지 받았습니다. 그리고 가계부가 증명하는 숫자들.

2007년 (만1세) : 9,952,150원

2022년 (고1) : 4,418,455원

2023년 (고2) : 3,276,834원

2024년 (고3) : 4,991,107원

사교육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고등학교 학부모치고는 놀라운 방어율이죠.

수학은 남편과 함께, 나머지는 메가스터디 인강으로 했습니다.

그 아이는 지금 소위 '수시 납치'를 당해 고려대학교 인공지능학과에 다니고 있습니다.


진짜 투자는 교구가 아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1,000만 원어치 교구와 전집이 핵심은 아니었습니다.

진짜 투자는 250권의 육아서를 읽으며 제 자신의 태도를 바꾼 것이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닥치는 수많은 불안 속에서도 중심을 잡으려 애쓴 그 독서가, 비싼 교구보다 훨씬 결정적인 변수였습니다.


물론 좋은 교구와 그림책 전집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필요합니다.

하지만 주양육자의 올바른 태도 없이 교육비만 쏟아붓는다면, 그건 투자가 아니라 투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요즘 '4세 고시', '7세 고시' 뉴스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합니다. 거창하고 값비싼 사교육 로드맵을 짜기 전에, 가까운 도서관에서 키우는 사람의 '양육 비전 로드맵'부터 찾아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뻔한 소리 같겠지만

그게 진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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