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가계부는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24년 가계부 실전후기 #소비기준 #소비철학 #새우깡 #무지출데이

by 두번째지니

[3화] 600원 새우깡 앞에서 햄릿이 되다 : 가계부의 기준


분류기호: 595 (생활과학 - 가계 관리) / 327.8 (경제학 - 금융투자 , 개인재무관리)


가계부를 쓸 때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요? 저는 단연코 '분류'라고 생각합니다.

항목을 어떻게 나누느냐에 따라 돈의 흐름이 보이고, 그래야 비로소 계획을 세울 수 있으니까요.


저에게는 확고한, 남들이 들으면 좀 유별나다 할 철칙이 하나 있습니다. 퇴근길 편의점에서 맥주와 과자를 사 와 집에서 먹는다면? 이건 '외식비'입니다. 반면 마트에서 미리 사다 쟁여놓고 집에서 먹는다면? 이건 '식비'입니다.


식비는 필수 생존 비용이지만, 외식비는 줄일 수 있는 기호 비용이니까요. 저는 항상 식비가 외식비보다 커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해 왔습니다. 이 기준이 흔들리면 돈을 모을 수 없다고 믿었거든요.


'외식비' 하니 웃지 못할 2004년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신혼집은 새절역 4번 출구 바로 뒷골목 다가구주택이었어요. 뛰어가면 1분인 초역세권이었죠. 어느 날 밤, 남편은 아직 퇴근 전이고 혼자 TV를 보는데 불현듯 새우깡이 미친 듯이 먹고 싶은 겁니다.


집 앞 편의점에서는 600원, 이마트에 가면 480원. 고작 120원 차이였지만, 저는 그 밤에 꽤 심각한 갈등에 빠졌습니다.


당시 저는 본능적으로 '무지출 데이'를 실천하고 있었거든요. 오늘 지출을 '0원'으로 기록하느냐, 아니면 새우깡 하나 때문에 가계부에 '외식비 600원'이라는 오점을 남기느냐.


처음엔 참아보려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비참해지더군요. '내가 600원이 아까워서 과자 한 봉지도 못 먹는 처지인가?' 서러움이 밀려왔습니다. 먹을까 말까, 사러 갈까 말까. 거의 3시간을 햄릿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고민했습니다.


결국 저의 선택은?


"안 먹는다."


편의점에서 제값 주고 사 먹는 과자는 내 형편에 '사치'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지금은 새우깡이 6,000원이라도 살 수 있고, 당장 배달도 시킬 수 있는 형편이 됐지만요.)


그 집에서 8년을 살면서 코앞의 편의점을 이용한 건 딱 한 번 뿐이었습니다. 후두염에 걸려 밥을 넘길 수 없는데 남편도 없던 날, 살기 위해 사 온 인스턴트 죽. 그건 생존을 위한 것이었기에 당당히 '식비'로 적었습니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저만의 유연한 기준, 아니 '귀여운 꼼수'도 부려봤습니다. 학부모 모임이다 뭐다 옷 입을 일이 생기니 의복비 지출이 눈에 띄게 늘더군요. 그래서 '품위유지비'라는 항목(실질적으론 의복비)을 신설해 월 10만 원, 연 120만 원 한도를 정했습니다.

그런데 예산이 빠듯했어요. 그때 묘안을 냈죠.


"속옷과 양말은 필수품이니 의복비가 아니라 '생활용품비'로 보내자!"


몸에 걸치는 건 매한가지지만, 이렇게 항목을 옮기니 의복비 예산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제 머리가 얼마나 비상하게 돌아가던지, 스스로를 한참 칭찬해 주었답니다.


품위유지비의 꽃은 '귀금속'이었어요. 생일(3월)과 결혼기념일(4월) 선물을 합쳐 매년 한 번 100만 원어치 반지나 팔찌, 목걸이를 샀습니다. 단순한 사치가 아니라 '환금성'이 있는 투자였으니까요.


아들이 초2(2014년) 때 60만 원 주고 산 팔찌를 디자인이 올드해져서 최근(2025년 12월)에 팔았더니 무려 170만 원을 받았습니다. 쓰고 즐기다 돈까지 벌었으니, 이보다 현명한 소비가 또 있을까요?

헤어지기 전에 급하게 한 장 찍었네요^^

가방에 대한 기준도 엄격했습니다. 아들 입학 전엔 10만 원, 초등 저학년 땐 20만 원, 내 집 마련 전인 2024년까지는 40만 원이 넘는 가방은 '분수에 맞지 않는다'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 긴 인내의 시간을 지나, 2026년인 올해 저는 생애 첫 명품백 구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분수에 맞게 기준을 정해놓고 살다 보면, 어느새 분수는 올라가고 기준도 자연스레 높아집니다.

처음부터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을 급하게 취하려 했다면, 제 그릇은 평생 커지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600원 새우깡을 참아낸 치열했던 밤들이 모여, 지금의 여유를 만들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때의 가난한 새댁은 약 20년 후 '내 집'과 10억 원가량의 금융자산을 굴리는 자산가가 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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