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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잎맥이 있다

by 이하늘

걸음마다 소리가 밟혔다.
마른 잎들이 건조하게 구겨지며 납작해지기를 몇 차례일까, 수없이 밟히다가 이렇게 사그라드는 건가.
내려다본 발밑에 한쪽 귀퉁이 잎맥만 남은 낙엽이 있다. 촘촘한 그물망 같은 그것은 들여다보는 시간에

비례하여 징그럽게 느껴졌다. 단지 형태에서 오는

불쾌함이었는데 이것이 너의 뼈대인 거니라고 묻자

나의 살덩이 속의 그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았다.
징그러운 게 아니었구나 미안.
자글자글한 잎맥은 생전에는 물과 양분이 지나가는
통로였겠지만 이제 더는 그런 것은 필요 없어 하얀 뼈로 굳은 걸까.

만지면 곧바로 바스러질 것 같았고 미안한데도
조금은 꺼림칙해 주머니에서 손은 꺼내지 않았다.
내려다보던 시선을 올리고 보는 풍경은 여전히 곱다.
채도 높은 나뭇잎들은 황혼의 노을 같아

알록달록 한데도 씁쓸한 건 나는 금방 너희의

잔해를 봐서 그런가.
져버리는 추락을 보며 예쁘다 하는 것을 낙엽인 너희는 떨어지며 징그럽다고 생각할까.
형태에서 오는 불쾌함이 아닌 행태에서 오는 몸서리로 치를 떨며 그렇게 우리의 발에 밟힐까.
걸음을 멈춰도 들리는 마른 소리는 떨어지는 것이 아직 매달린 것을 스치는 소리였고 그 가벼운 듯 얇은 소리가 이질적으로 끊어진 순간이었다.
떨어지고 매달린 그것들이 스치지 않고 마주 안은 것이었다.
커다란 양버즘나무 잎이었는데 아주 확실하게 겹쳐져 결합한 모습이 퍽 애틋해 보이기까지 했다.

떨어질까 꼭 붙잡고 있었다. 바닥의 널린 시체들 틈에 아직은 보낼 수가 없었다. 차라리 조금만 기다려 함께 낙하하자고 밟히고 썩혀 뼈대만 남아서 우리 함께 분해되는 것이 최선의 해피엔딩이니까.
매달린 잎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이 계절의 바람은 자비롭지 않은 것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나를 둘러싼 온 사방이 추락과 죽음이었다.

나무들이 토해내는 시뻘건 것들이 내 발밑과 사방에 깔려있다. 이러고선 다시 새순이 돋다니.

그것이 너희를 애도할 필요 없다는 건 아니지.
잉태되어 태어난 인간에게 축복이 죽어버린 인간들을 위한 것은 아닌 것처럼. 우리는 생과 사로 순환한대도 나의 죽음은 그것으로 죽음이니까. 그저 순환이란 죽은 만큼 무언가 태어나고 그만큼 무언가 죽는 거니까.
너희의 해피엔딩을 빈다.

바람이 아주 느리게 그곳에 도달하길 바란다.
세 계절의 기억을 매년 털어버리는 나무, 그 나무에서 떨어지는 기억들이 이 땅에 스며들어 축적된다. 겨울 동안 단단하게 얼고 굳어 또 한 겹의 지층을 만든다. 그렇게 이루어진 거대한 지구. 땅으로 돌아가는 모든 것들의 기억을 품으며 어린순을 틔운다.

나는 추락하여 죽은 것들로부터 탄생하였다.
내 피부 안엔 잎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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