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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우 Nov 30. 2022

차가운 겨울 일지, 따스한 겨울 일지

- 1부 :  1타 강사도 아닌데 뭐.

어디 가서 사주를 보면 필자는 호랑이 해(年), 호랑이 달(月), 호랑이 시(時)에 태어났는데, 만약 호랑이 날(日)에 태어났다면 옛날 옛적엔 왕, 요즘으로 치면 대통령이 될 사주였다고 아쉬움을 표하는 이야기를 듣곤 했었다.

그럼, 지금 적어도 뭐 국무총리쯤은 됐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사주는 뻥인가요?라고 항의해보고 싶다)


영화 '관상' - 내가 왕이 될 상인가?  이정재는 언제나 멋지다.


코로나로 전 세계 경제가 서서히 불황으로 가고 있던 와중에도, 그간 몸담고 있던 대치동 학원은 (필자가 강의를 잘해서 수강생이 늘었다는 주변의 평가가 있었음. 진짜임, 으히힛) 사세를 확장하고 있던 모양새여서 그랬는지 몰라도  호랑이 해 2022년의 시작은  나에게 뭔가 큰 행운이라도 가져다줄 것 마냥 기분 좋게 시작되었다.


2021년~2022년 겨울 시즌에는 딸아이가 스키를 배우는 것을 너무 좋아하게 되어서 평생 스키를 만져본 적도 없던 팔자가 바뀌어, 금요일 밤마다 새벽어둠을 뚫고 평창으로 향하는 길이 험난했지만 하얗게 덮인 스키 슬로프와 발왕산 풍경 속에 빠져들어 그 겨울을 바쁜 주중과 여유로운 주말의 이중적 패턴으로 보냈던 것 같다.



발왕산 케이블카 안에서 직접 찍은 전경


학원업계의 큰 단점 중 하나는, 강사가 필자처럼 뛰어날 경우 (읽는 분들께 심심한 유감을..) 대체인력이 없으므로 아파도 안되고 사고가 나서도 안된다는 점이다. 물론 어찌어찌 돌려막기가 한두 번 정도는 가능하지만 그것이 하필이면 새로운 학기 시작 지점과 같은 중요한 시기일 경우, 처음으로 그 강사의 강의를 듣게 될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던 학부모들에게는 (학생들은 항상 별생각 없다) 학원에는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그 일이 필자에게 일어났다. 코로나에 걸린 것이다.


신입생들이 넘쳐나고 학원 확장도 해놓은 와중에, 3월 첫 학기 시작일에 맞추어 호랑이 해의 엄청난 기운을 듬뿍 받았을 텐데도 불구하고 목이 컬컬하던 월요일 아침 코로나 검사에서 양성이 나왔다.


학원 측에 연락을 하고, 딸과 아내에게 옮겨지지 않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급히 에어비앤비를 통해서 코로나 환자가 격리해서 지낼 수 있는 숙박시설을 알아보고 이동했다.


Zoom 프로그램을 이용해서라도 우선 수업은 진행해야 했기에 열이 올라 어지럽고 목소리도 거의 안 나오는 상황에서 (급하게 고르다 보니 잘못 잡은 퀴퀴한 냄새나는 홍대 쪽 골방이었음) 3시부터 10시까지 쉬는 시간이 없는 장장 7시간의 수업을 위해 급하게 노트북과 전자펜 세팅을 하고 나니 영혼은 이미 반쯤 가출한 상태였던 듯하다.


똘똘한 눈망울들을 직접 봤으면 더 좋았겠다는 마음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수업을 종료하고 춥고 텅 빈 방 안에서 잠시 넋을 놓고 있다가 7일간 격리하기에는 너무 열악한 그곳에서 벗어나고자 필사적으로 좀 더 좋은 방을 알아보고 새벽에 이동을 시작했고 그곳에서 너무 아팠던 하루를 제외하고 수업을 힘겹게 이어나갔다.


대체인력이 있는 회사 조직이나 다른 직업군들이 그때는 얼마나 부러웠던지, 새삼 16년의 강사 생활이 나름대로 자랑스럽고 보람 있었으나 그동안 너무 관성에 젖어 생각 없이 달리기만 했다는 생각이 너무 심하게 들었다. 역시나 코로나에 걸려버린 딸아이를 케어하느라 고생할 아내에게 근 10년간 주중에는 함께 저녁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미안함까지 더해져 목소리를 들으면 너무나 고맙고 죄스러운 마음이 교차했더랬다.


학원으로 복귀하여 몇 달을 더 지내면서 그 당시 생겼던 날 선 후회와 무거워진 자책감이 스스로를 감싸고 있다는 걸 문득문득 깨닫고 있던 무렵, 타 지역으로의 확장에 투자를 기대하던 원장에 반대를 해서였는지 아니면 이런 나의 감춰놓은 생각을 눈치챘는지 계약 종료를 하게 되었다는 통보를 받게 되었다.


"선생님 덕분에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래도 주말에도 나올 수 있고 좀 더 열정을 가지고 하실 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죄송하지만 계약 종료를 부탁드립니다"


그 이야기를 하던 밤에 웃으면서 잘 알겠다고 '내일 뵙겠습니다'라는 인사를 남긴 채,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다지 큰 충격이나 상실감은 없었던 듯하다.


공동원장 자격으로 학원 운영 경험도 있던 터에, 학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뭐 그럴 수도 있었을 거다라고 어느 정도 이해를 했던 듯하다.  


1타 강사라서 억만금을 버는 것도 아니고 (2타 강사 정도 아니었을까..) 무엇보다 슬슬 이 지겨운 굴레를 찬 강사 생활에서 벗어나 저녁과 주말이 어느 정도 보장되고 시간을 좀 더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그런 일을 찾아보고 싶은 욕망이 너무나 강했던 탓일 듯싶다.


'그래, 이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자.  누군가에게 시간과 노력을 빚지지 않아도 되는 그런 일이 있지 않을까?"


집에 오는 내내 이런저런 생각으로 가득 찬 머리는 그저 무거웠던 것 같다.


-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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