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수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고2 남학생 한 녀석이 옆으로 쓱 다가옵니다.
"쌤, 저 상담할 것이 있는데요."
"어, 그래~ 앉아봐~"
"요즘 클래스***이나 클**유 이런 데서 막 돈 몇억씩 벌었다고 하고 그런 노하우 알려준다고 하고...
따라만 하면 누구나 돈 벌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런 강의 좀 들어보면 어떨까 해서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잠시 머리가 멈칫했죠.
이유는 2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는 저도 본의치 않게 쉬는 동안 그런 종류 강의를 샘플로 들어보고 이런저런 여러 가지 시도를 치열하게 해 봤던 터라, 소위 '경험자'로서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였습니다.
두 번째는 이 어린아이가 벌써 돈이라는 가치에 이렇게 일찍 눈을 떠서 그런 광고에 혹할 만큼 세상의 보편적인 가치들의 가장 꼭대기에는 역시나 돈이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도 스쳐 지나가서 인가 봅니다.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공부를 일단 열심히 하자.
정말 필요한 강의가 무엇인지 가려낼 수 있는 능력부터 키우자. 이렇게 적당히 얘기해 주고는 바쁜 와중이라 잠시 잊었는데 지나고 생각해보니 참으로 씁쓸한 마음이 가시지를 않더군요.
'월 천만 원 누구나 따라 하면 벌 수 있습니다!'
'난 인스타그램으로만 월 200씩 번다'
작년부터 너무나 많은 강의들과 전자책들이 쏟아져 나왔고 (제 이전 글들을 읽어보시면 아실 수 있겠지만) 저 또한 방향을 다른 곳으로 꺾어보고자 부단히 찾아보고 실행해보길 반복했었습니다.
지금은 제 사업과 관련된 마케팅 강의를 하나 듣고 있는데 워낙 신중하게 고른 터라 만족하며 찬찬히 듣고 있지만, 다른 강의들은 섣불리 들었다면 꽤나 쓸데없는 시간낭비, 돈낭비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가끔 아찔합니다.
많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분들이 꽤 많다고 생각합니다.
가르치는 일을 접고 시간에서 자유로우면서 뭔가 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었습니다.
(얘들아, 공부 좀 하자 라고 소리지르는 것도 지긋지긋..)
그래서 소위 '해외구매대행'이라는 분야를 통해 온라인 셀러가 되어보려고 마음먹게 되었죠.
사업자 등록증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준비에, 자격신청을 하고 수수료를 내고 드디어 스마트 스토어에 입점하면서 그동안 찾아봤던 수많은 유튜브들과 인터넷 도매전문회사에 직접 찾아가서 들었던 강의의 내용들을 토대로 이런저런 일들을 열심히 해보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지금은 사업자 등록증을 말소시키고 스마트 스토어도 폐점하고 빠져나온 상태입니다.
능력도 안되고…저라는 사람의 성향과도 안 맞는다는 걸 일찍 깨달아서인 거죠. (크흡)
물건을 판다는 것은 두 종류가 있을 것입니다.
남의 물건을 떼어다 팔거나, 자기 자신의 물건을 팔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죠.
갑자기 자신의 물건이 생길리는 없고 남의 물건을 어떻게든 싸게 떼어와서 비싸게 팔아야 하는 것이 숙명인 장사꾼이 되는 것은 웬만한 안목과 노력 없이는 그렇게 크게 성공하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여정의 최종 목적지는 남의 물건을 내 브랜드화해서 자신의 공장, 판매루트 등을 만들어내어 자신의 사업을 스스로 개척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죠.
강의를 따라 한다고 그분들의 노하우를 바로 습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옆에서 붙어서 코칭을 해준다고 해도 그분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시대적, 경제적 흐름과 상황이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점..
그리고 결국 스스로가 해내야 하는 지점이 반드시 존재하는 이런 일에서 단지 몇 마디의 조언과 강의 내용이 만족스러울 정도의 결과물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처럼 쉬웠으면 다들 자기 사업체에서 자체 생산된 좋은 물건들을 판매해서 성공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많았겠죠. 하지만, 그런 강의들의 댓글들에는 한결같이 이제부터 열심히 해보겠다는 말만 있지 실제로 원하는 수익을 얻어냈다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명확하죠.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일겁니다.
몇 년이 필요할지, 몇십 년이 필요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고 '경험'과 '노력' 그리고 '반짝거리는 아이디어'가온 힘을 다해 협업해야하는 그런 일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스스로가 그런 일을 하는데에 적합한 사람인지를 따져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었죠.
트렌드를 분석하고, 감각적이며 시류에 맞추어 적재적소에 무엇이 필요한지 빠르게 캐치할 수 있는 과감하고 부지런한 그런 사람말이죠.
인스타그램으로 수익화를 했다던가, 블로그 마케팅 혹은 카페로 돈을 벌었다던가, 전자책에서부터 유튜브로성공했다는 분들의 이야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은 본인의 지식적 능력을 발현하여 글을 쓰거나, 홍보를 하거나 사람들을 모아 무언가를 해내야 하는 종류의 사업에서는 말 그대로 스스로의 자체적 역량이중요한 것이고 그것을 키워내는 데에 일정 부분 도움을 주고 좀 더 빠른 방법을 알려줄 수는 있겠지만 지식을 쌓고 그것들을 잘 요리하여 보기 좋게 표출해 내는 것이 단기간 내에 될 리가 없는 것이죠.
이미 사업체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마케팅이 부족하다거나, 글쓰기 능력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 블로그를 운영한다거나, 사람들에게 서비스할 수 있는 자신만의무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널리 그것을 공유하고 싶다면 이런 강의들은 매우 유용할 것입니다.
하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는 노릇이며 그래서 스스로의 위치와 능력을 잘 알고 그에 맞는 그리고 정말 필요한 강의가 무엇인지 선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강의들 같은 경우에는 코스를 따라 올라가면서 강의료가 점점 더 비싸지고 최종 강의를 봐야만 '핵심적인 노하우'를 알려준다고 하면서 적게는 100만 원대에서 가장 비싼 것은 천만 원대의 강의도 보았습니다.
노하우는 어차피 자신들의 전문 영역이니 강의를 팔아서 또 다른 수익을 내려는 것은 자본주의 논리로는 충분히 이해가 가는 것입니다.
투자한 그 이상을 벌 수 있기 때문이고 '싼 것은 비지떡'이므로 비싼 강의를 들어야 제대로 된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식의 논리 또한 먹힐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능력을 단순하게 강의를 통해서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을 담보하는 것 자체가 미덥지는 않더라고요.
자신의 강의를 들은 사람들 중, 극소수의 잘 된 사람들을 예로 들고 출연시켜 대다수의 경우가 그러하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분들도 많고 보통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자수성가하셔서 이제는 이런 일도 할 수 있다며 부러움을 자아내며 광고를 하는 분들도 꽤 많습니다.
돈이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중에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겠지만, 그것을 왜 가지고 싶어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 듯합니다.
아이들이 모두 의대, 한의대, 치대, 수의대를 가겠다고 목숨 걸고 공부하는 이 시대에 그들에게 왜 거길 가고 싶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은 "돈을 잘 벌잖아요"라고 아주 피상적인 목표로 대답합니다.
그들의 대답이 사람을 살리고, 학문을 발전시키고 사회와 인류에 자그마한 보탬이 되고 싶다는 조금은 추상적이며 예전에 보편적인 가치들로 당연시 여기던 그런 것들로 돌아가면 좋겠다는 바람을 해봅니다.
어쩌면 우리가 열심히 이곳에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어느 정도는 그런 따스한 가치들을 위함이 아닐까 생각해 보면서 말이죠.
어쨌든, 정신 차려야 합니다.
원하는 걸 그렇게 쉽게 떠먹여 주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 리 없으니까요.
어차피 스스로 길을 찾아내고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것은 변함이 없을 겁니다.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