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마을(1982)에 대한 단상

by BullshxtaboutCinema

안개마을(1982)/Village of Haze - 임권택


외지인 선생의 시골마을 발령을 시작으로 하는 서사는 샘 패킨파의 어둠의 표적을 떠올리게 한다.


어둠의 표적이 응축된 폭력의 씨앗을 터뜨리는데 집중하지만 임권택의 안개마을은 폭력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비슷하게 인간의 본성을 다룸에도 차이점이 바로 이것이다.


임권택은 미스테리함을 강조시킨다. 깨철이의 존재가 수옥에게 미스테리이다. 집성촌엔 드문 외지인 깨철이를 향한 의문을 품는 과정이 전반적인 영화의 맥락이다.


집성촌을 배경으로 외지인은 총 세명인 것으로 추정된다. 깨철이와 수옥, 그리고 술집 벙어리 산월이다.


급격히 얘기를 진행하면 결과적으로 깨철과 산월은 집성촌의 특성에 따른 성적 도피소였다. 극단적으로 폐쇄된 사회 속에서 근친번식을 피해 심리적으로 자유로운 성적 휴게소였달까.


이러한 배경 속에서 깨철은 수옥을 겁탈한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이 모든 미스테리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수옥이 오히려 한순간의 정사로 인정해 버리면서 모든 설정의 깊이가 얕아진다. 폐쇄된 사회의 성적 억압을 얘기하는 담론을 형성하다가 같은 외지인이 개입되며 그 대상이 모든 인간상으로 번지면서 말이다. 이는 영화 중반 수옥이 약혼녀를 기다리며 기차역에서 듣는 라디오에서도 어느 정도 드러나고 있긴 하다.


도시의 사람들의 익명성이 성적 문란함으로 번진다는 Dj의 말을 통해서 말이다.

그렇게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이 이야기를 할 이유가 사라져 버린다.


이 모든 것을 떠나 수옥이 깨철에게 성폭력을 당했음에도 이를 한순간의 정사로 인정하고, 이를 (당시) 현대인들의 억제된 성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인정하게 됨으로써 중대한 범죄행위를 에로티시즘적으로 자위하는 낡은 사고를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의 결론이다.


하지만 낡다 못해 추잡한 그 사고에도 불구하고, 이를 담아내는 미학적으로 완벽한 씨네마토그래피에 의해 존재의 의의가 생긴다.


촬영감독은 강원도 산골마을 풍경을 집착적이고 기하학적인 프레이밍을 통해 이 모든 사건들의 원인을 인간의 탐미적인 본능으로 설명하며 에로티시즘을 변호한다.

거듭 말하지만 다만 가치가 생기는 것은 이를 담아낸 촬영감독의 숏들이고,


이에 더해 그 숏들에 담긴 정윤희의 표정이다.

정윤희의 표정은 마치 무성영화 시절의 배우들을 보는 듯한 경지이다. 대사가 필요 없는, 그 표정만 보아도 인물의 뇌리가 그려지는 수준의 연기를 선사한다.

얼굴이 곧 씨네마가 되는 배우가 80년대에 존재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결과적으로 완벽한 피사체와 이를 담아내는 촬영의 극한의 경지가 이 영화의 성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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