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나 기관마다 적용하는 인사관리 시스템이 있다. 이렇게 일 잘하는 인공지능이 나온다면 AI에게 평가를 맡기지 않을까?
공무원 평가는『지방공무원임용령』과『지방공무원 평정 규칙』에 따라 6개월에 한 번씩 이루어지는데 인사요인이 발생하면 수시로도 평가한다. 평가항목은 근무실적 50퍼센트, 직무수행능력 50퍼센트가 기본이지만 적용항목과 비율은 기관마다 조금씩 달리할 수 있다. 평가방법이 법에 명시되어 있어 상당히 공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대부분 연공서열 또는 힘 있는 상급자와 얼마나 강한 유대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변수가 있다. 그런 변수를 두고 ‘열심히 일하는 것은 기본이고,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지.’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그 알파는 대부분 아부와 의전은 물론 든든한 백그라운드가 포함되는데 듣기 좋은 말로 인맥이지 술친구, 학연, 지연, 혈연, 심지어 흡연까지 요긴하게 작용한다.
규모가 작은 지방일수록 혈연관계까지 얽혀 있는데 배우자는 물론 자녀, 사돈에 팔촌까지 같은 기관에 근무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니 복잡한 사람관계를 매뉴얼화하여 누구와 누구는 가족이며 누구와 누구는 앙숙이며 누구와 누구는 직전 직급이 동일하니 경합되지 않도록 찢어 놓아야 한다는 등등 필수적으로 걸러야 할 것들을 코딩해서 프로그램으로 만든다면 참으로 합리적인 인사관리 시스템이 만들어질 것도 같다. 그러면서 기술은 점점 진화 단계를 거쳐 AI가 부서장의 리더십을 평가하는 날이 조만간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본다. 이렇게.
A부서장은 그래도 몇 안 되는 제대로 된 리더로 손꼽힌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A부서장과 코드가 잘 맞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 업무 관련 보고서를 두고 A부서장과 B팀원이 충돌을 일으켰다. A부서장은 자제력을 잃지 않으려고 했지만 의견이 좁혀지지 않자 B에게 “자네는 회사를 놀러 나오는 것 같다.”라고 했다. 그리고는 재빨리 말이 심했다면서 사과를 했다. 하지만 B팀원은 이미 깊은 상처를 입었고 홀로 야근하던 그는 사그라지지 않는 분노와 심한 자괴감에 사내 챗봇(AI)에게 하소연했다. “A부서장은 정말 한심해, 내가 ○○에 대해 보고서를 올렸는데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설명도 없이 그저 잔소리만 하고 있어. 너는 A부서장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말해줘.”라고 했다.
챗봇은 A부서의 인간적인 모습은 알 수가 없다. 다만 그동안 A부서에서 추진한 업무 내용과 부서장의 결재시간, 출·퇴근, 연가 기록, 부서 평가 결과 등을 분석한 후 A부서장의 성향을 말해준다. 챗봇의 학습활동에 흥미를 느낀 B팀원은 질문을 바꿔가며 A부서장의 옳지 않은 행동들을 들춰내라고 한다. 한 술 더 떠 다른 부서장과 비교하며 우리 조직에서 가장 좋은 러더를 추천해 달라고 한다. 챗봇은 회사 내 부서장급에 대한 데이터를 모아 유의미한 값들을 산출하고 비교하고 빅데이터 분석까지 면밀하게 수행한 후 적정한 누군가를 추천해 준다. B팀원의 실험이 여기서 끝난다면 웃고 말겠지만 이미 우리는 안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것을.
언뜻 보면 흥미롭고 유용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공직사회에 적용한다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고성능의 슈퍼 컴퓨터에 최상의 알고리즘을 심는다 해도 기계에게 사람을 평가하도록 허락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기계도 완벽하지 않다. 아무리 인공지능이라도 제때 업데이트를 하지 않거나 알고리즘에 오류가 있으면 엉뚱한 답을 내놓거나 잘못된 정보를 늘어놓을 수 있다. 앞에 언급된 영국의 택배회사도 관리 소홀로 결론이 난 것을 보면 말이다. 기계는 인간을 보조하는 역할에 충실하도록 설계되고 운영되어야 한다.
최근 ’ 최악의 리더‘를 피하기 위해 팀원이 ’함께 일하고 싶은 부서장을 선택‘하는 회사도 있다고 한다. 지금은 함께 일하고 싶은 부서장을 업무성과와 직원 선호도를 반영하는 아날로그식 방식이지만 몇 개의 평가항목과 사내 전자문서 운영실적을 데이터화한 AI의 정량평가로 결정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본다. 앞의 예시처럼 평상시 90퍼센트 이상 좋은 리더로 알려져 있지만 특수한 상황에서 10퍼센트 비호감으로 되었을 때 인공지능은 이것을 걸러낼 수 있을까. 아무리 기계가 정교하고 인간의 감정을 잘 읽도록 딥러닝을 했더라도 인간만이 알 수 있는 경험이나 감정의 표출을 반영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싶은 부서장은 어떤 사람일까?
매년 1월이면 정기인사가 있다. 어디로 갈 것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집에서 출발할 때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던 함박눈은 주차장에 들어서자 뚝 그쳤다. 이제 그만 생각하자. 오후가 되면 어디로 갈지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