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부서장 워크숍이 다녀왔다. 거기서 들은 이야기는 흥미를 넘어 섬뜩했다. 매년 1월이나 7월에 있는 정기인사에서는 많은 직원들이 자리를 옮긴다. 당연히 업무분장을 해야 하는데 거기서부터 문제가 생긴다. 사무를 배분할 때는 이미 전임자가 처리하던 분장표가 있기는 하지만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국가의 주요 정책 기조에 따라 추가되는 일들이 생기도 하고 지자체장의 공약으로 새로운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부서장은 그 부서의 중요 순위를 정하고 추진에 대한 총괄 책임을 담당하기에 업무분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A부서장은 이번 정기인사에 주요 프로젝트를 7급 선임에게 맡길 것을 요청했다. 전에 있던 7급 선임이 몸이 좋지 않아 업무가 버겁다고 해서 경력이 얼마 되지 않은 8급에게 맡겨 왔던 것이다. 이번에는 튼실한 7급이 왔으니 제대로 시켜 보겠다는 생각이 들어 해당 팀장과 팀원을 불러 모은 뒤 자기의 뜻을 전했다.
그런데 다음 날 오후가 되어도 사무분장에 대한 내부결재가 올라오지 않더란다. 그래서 팀장에게 슬쩍 물어보았더니 한숨만 푹 쉬더란다. 이유는 새로 온 7급 선임이 전에는 8급에게 업무를 보라고 한 것을 왜 자기가 해야 하냐며 따지더란다. 그래서 8급에게 그냥 예전처럼 업무를 계속하라고 했더니 이번에는 8급이 발끈하며 그렇지 않아도 7급이 해야 할 일을 자기가 해서 힘들었는데 하지 않겠다고.
팀장이 두 사람을 따로 불러 달래도 보고 함께 불러 협상도 해봤지만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더란다. 그 업무는 공중에 붕 떠있었다. A부서장은 너무 화가 났다. 7급이나 8급에게도 실망했지만 자기 팀 업무 하나 제대로 조율하지 못하는 팀장이 한심스러웠다. 그러다 부서장 말도 무시하는 팀원들이 팀장의 말이라고 들었겠는가 싶더란다. A부서장은 팀원들을 다시 부를까 고민하다 그만두었다.
뚜렷한 대안도 없이 개입해 봐야 서로 불편할 일만 생길 것 같았다. 인사발령일이 꽤 지났지만 그 팀만 사무분장이 없었다. 당연히 그러면 안 되지만 부서장은 재촉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결론이 났다. 정기인사가 마무리되면 인사부서는 각 부서의 사무분장표를 요구한다. 그렇게 해야 개별 업무별로 지급되는 수당이나 특수 업무 수행자를 체크하기 때문이다. 이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 된 사무분장. 오후에 결재가 올라왔단다.
A부서장은 30년이나 근무했지만 이런 업무분장은 처음이라고 했다. 한 업무를 팀장, 7급, 8급, 이렇게 세 사람이 나눠 가졌다. 뭐라 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참았다고 한다. 어쨌든 문제는 해결됐으니까. 이 말을 들은 다른 부서장들은 뭐 그렇게까지 하느냐면서 7급이 누군지, 8급이 누군지를 물었다. 하지만 A부서장은 오히려 잘 된 것 같다고 했다. 같은 업무를 세 사람이 공유하니 마음만 잘 맞으면 더 좋은 성과를 낼지도 모른다며 허허 웃었다. 그리고 커피 한잔 하겠다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를 뜨려던 그가 돌아서서 한마디 했다.
“내가 만약 명령을 해서 사무를 조정했다면 어땠을지 생각해 보라고. 시킨 사람은 늘 미안한 생각에 제대로 하고 싶은 말을 못 했을 거고, 억지로 떠안은 사람은 나름 불만으로 일에 흥미가 없겠지. 그러니 그냥 자기들끼리 하라고 내버려 둔 거지.”
‘내버려 둬’, 렛잇비(Let it be). A과장의 말이 끝나자 섬광처럼 국장의 한마디가 스쳤다. 우리 인생은 수학문제처럼 딱 덜어지는 정답이 없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그러다 막히면 다시 모여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대책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업무분장은 사람에 따라, 업무에 따라 때로는 시대에 따라 수시로 바뀌면서 뱅글뱅글 돌면서 목적지를 향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