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버려 둬'의 한계
한참 이해해야 할 조직문화
과장 보직 발령이 사내 게시판에 올려진 걸 확인하고 바로 직근 상급자인 국장에게 인사를 갔다. 반갑게 맞으며 국장은 온장고에서 쌍화탕 두 병을 꺼내 탁자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나와 마주 앉았다.
국장실에 있는 둥근 직사각형 탁자는 총 아홉 명이 앉을 수 있다. 양쪽에 네 개의 의자가 있고, 상석에 의자 한 개가 있어 국장은 항상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평상시와 다르게 굳이 자리를 옮겨 앉는다. 나는 이게 뭐지?라는 심정으로 의자 위에 엉덩이를 띄운 채 엉거주춤 서 있다. “이제는 과장님인데 예우해야지.” 상대가 한 직급 높아졌으니 하급 부하가 아니라 동등한 직위로 봐주겠다는 의미였다. 굉장히 낯설었다. 이것도 의전에 속하는 걸까? 공무원 조직은 심한 관료 냄새가 배어있다. 늘 상급자에 대해서는 공손해야 한다고 배우는데 쉽지 않다. 주변에 진짜 의전을 잘한다는 선배나 동료가 있기는 하지만 자세히 보면 상향식이다. 윗사람에게는 오뉴월 버들잎처럼 살근거려도 아랫사람을 대할 때는 억새처럼 거칠다. 가끔은 위냐 아래냐를 가리지 않고 진심으로 상대를 예우해 주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다. 진정한 의전은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거라고. 그래서 오히려 과도한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부류도 있지만 나는 의전이 꼭 아부와 같은 말인 것 같아서 신경을 거의 쓰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국장이 내게 보여준 작은 예우는 낯설지만 나쁘지 않았다. 상대를 예우한다는 것은 존중과 같은 의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 의전편람‘을 만들어 나눠주는 것인가. 물론 대외적으로 중요한 행사나 회의는 의전이 필수인 것은 사실이다.
잠깐 사이 침묵이 흐르고 국장은 병뚜껑을 비틀었다. 나도 따라 열었지만 그냥 들고 있었다. 난방 온도가 낮아 약간 한기가 느껴졌다. 시린 손으로 감싸 쥔 음료는 먹는 것보다 들고 있는 게 오히려 나았다. “그저 직원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둬.” 뜬금없는 말이지만 너무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럼요, 그래야죠.”
그날 내가 한 말은 이게 전부였다. 대부분 국장이 말을 했고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거나 엷은 미소만 띠었다. 지루해질 즈음 누군가 노크를 했다. 이때다 싶어 얼른 일어나 인사를 하고 나왔다. ‘내버려 둬’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부서장이 묻기 전에 필요한 보고서를 만들고, 업무 추진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예견하고 사전 절차까지 철저히 대비하는 직원이라면 당연히 ‘내버려 둬’가 될 것이다. 어쩌면 그 ‘내버려 둬’를 뛰어넘는 다른 강한 신뢰를 보낼 수도 있다. 이런 직원이 있다면 모든 걸 제치고 얼른 우리 부서로 데려와야 한다. 하지만 찾기 어렵다. 엄청난 역량이 있어도 숨기기 바쁜 시대다. 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더 많이 하게 된다는. 너무나 잘 알려진 직장인의 비애를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다. 예전에는 한 부서에 두 세명은 일중독이 있었지만 팀원의 30퍼센트 이상이 MZ으로 바뀌면서 직장의 풍경도 달라지고 있다. ‘공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윗사람에게 잘 보인다고 승진으로 연결되지 않음을 안다. 그들은 부서장이 출입문을 힘차게 밀고 들어가는 순간 들려있던 고개를 자라목처럼 감추고, 괜히 마우스를 흔들어댄다. 그래봐야 바탕화면 반이나 차지하는 숱한 파일 사이를 배회하거나 공무원 전용 시스템인 새올이나 온 나라를 새로고침을 하는 정도인데 말이다. 게다가 사무실 안에서 큰 목소리로 직원을 부르는 것도 어렵다. 할 말이 있으면 조용히 메신저로 부르거나 메신저로 묻고 대답하는 일이 다반사다. 어떻게 하면 부서장의 눈에 띄지 않을까를 전전긍긍하고 어떻게 하면 새로 생긴 업무가 자기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해명할 궁리나 하고 있다. 쓰고 보니 요즘 말하는 ‘조용한 사직’과 비슷하다. 그런데 나도 그랬다. 오래전에 분위기가 지금보다 더 폐쇄적이라 표현을 못했을 뿐이지 대부분 실무자급은 이런 생각을 하며 다니지 않았는가. 시대는 다르지만 비슷한 상황이 반복된다. 미처 모든 것을 경험하지 않기에 새로운 것처럼 느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