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돼버린 공무원

여자도 직업이 있어야 해

by 오행시

1990년 10월, 지방 소도시 9급 공채로 들어왔다. 처음 발령 상태는 '수습 공무원'. 나중에 알았지만 수습은 공무원 경력에 포함되지 않는다. 호봉은 인정되고 공무원연금법 적용은 안되기 때문에 연금 경력에서 항상 6개월은 빠진다. 급여에는 반영되어 다행이지만 제대로 따진다면 정식 임용은 그다음 해 4월인 셈이다..


원래 공무원수가 결원이면 굳이 수습발령을 내지 않아도 되는데 대선배님들의 경험 부족이었다. 옆동네 동기는 정식 공무원으로 인정되는'시보'로 임용되었다. 그 6개월의 차이가 나중에 5년으로 벌어졌고 공무원 재직 내내 불이익으로 남았다. 같은 수습 출신 동기들이 모여 그때 이야기를 하면 그 억울함에 아직도 입에 게거품을 문다.


88 서울 올림픽이 끝난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팽창의 시기였다. 내가 속한 지역이 1989년 1월 1일 자로 세 개의 기초자치단체로 나눠졌다. 2개의 군(郡)과 하나의 시(市)였다. 1997년 IMF라는 위기가 닥치기 전까지 고용과 성장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민주화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면서 지방자치시대를 예고했다.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중단되었던 지방자치제도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1991년에 부활되었다. 그 해 3월 기초의회 의원 선거가 치러졌다. 별도의 자치단체로 승격되면서 많은 인력이 필요했고 세 개로 쪼개진 지역에서 공무원을 뽑기 시작했다.


나는 주소가 동(洞) 지역이라 시(市)에서 뽑는 임용시험을 봤다. 정확히 말하면 순전한 엄마의 계획이었다. 스물셋, 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그때만 해도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취직이 가능했다. 지금처럼 진로에 대하 자세는 진지했지만 취업의 기회는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남학생들은 주로 기업체, 공사, 임용시험을 준비했고 여학생들은 졸업 후 조신하게 있다가 결혼을 하겠다는 애들이 많았다. 학과 공부를 열심히 한 친구는 대학원이나 유학을 준비하기도 했다. 나는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전공성적도 그저 그렇고 기업체 취직은 자신이 없었다. 소심한 데다 이쁘지도 않았다. 인문대 특성상 외모가 츨중한 애들이 많아 항공사 승무원으로 가는 애들도 있었다.


나처럼 이도 저도 안 되는 동기생들과 함께 시작한 것이 공단 시험이었다. 연금관리공단, 의료보험관리공단 같은 기관이 막 생기기 시작했다. 기출문제집을 사서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 빨리 집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급한 일이 생겼나 하고 대충 문제집만 챙기고 집으로 내려갔다. 아직 중학생인 막내가 해맑은 얼굴로 반기는 사이 엄마는 내 사진이 붙은 응시원서를 눈앞에서 흔들었다.


시험까지 2주가 남아 있었다. 당연히 안 보겠다고 길길이 날뛰었다. 시험과목도 다르고 공무원이 뭐 하는 건지 알지도 못한다는 이유였다. 엄마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멀리 남쪽 하늘에 대고 말했다.


"여자도 직업이 있어야 해. 그래야 무시당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