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운이었다. 다행히 과목 몇 개는 공부한 것과 겹치기도 했고 추가된 '전산학 개론'은 처음 시도되는 만큼 문제가 쉬웠다. 필기를 통과하고 면접시험을 기다리는 동안 모교로 교생실습을 나갔다.
교육학을 부전공으로 선택해서 실습을 의무적으로 하게 되어 있었다. 4주 기간 중 면접시험이 있어 하루는 결근해야 했다. 면접날이 점점 다가왔지만 교감선생님한테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깡 마른 체구에 항상 뭐가 그렇게 못마땅한지 세상 걱정을 짊어진 얼굴이었다. 이 근방에서 가장 깐깐하기로 유명한 분이셨다.
미루고 미루다 면접 전날, 간신히 용기를 내어 교감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다. 요즘 같으면 축하한다거나 어서 다녀오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나는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감선생님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교감 수첩에 내 이름을 적으며 '그까짓 공무원 시험'이라고 들릴 듯 말 듯 혼잣말을 했다. 대놓고 무시를 당했지만 부끄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때만 해도 공무원은 고등학교 졸업자가 대부분이었다. 벌게진 얼굴을 하고 자리로 돌아가는데 흘끔거리는 선생님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다음날 아침 일찍 면접장을 가기 위해 채비를 하고 있는데 엄마가 큰일 났다며 방으로 들어왔다. 면접장소가 시청이 아니라 도청이라는 거다. 자가용이 귀할 때였다. 고속버스를 타도 3시간이 걸렸다. 부랴부랴 터미널로 달려갔다. 첫 차를 타면 시간 안에 들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6시 30분 첫차는 벌써 출발한 지 오래였고, 그다음 배차는 8시였다. 면접장까지 10시에 도착해야 했다. 원하는 시험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황당하게 끝나다니 어이가 없었다. 매표 직원과 한참 실랑이를 벌이던 엄마가 내 손을 잡아끌고 택시 승강장으로 갔다. 매표직원이 그렇게 급하면 택시를 대절하라고 알려젔다고 했다.
승강장에 두서너 대 정도 있었고 기사들은 차에 몸을 기댄 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엄마는 모여 있는 기사에게 사정 이야기를 했다. 갈 수는 있었지만 돈이 문제였다. 엄마와 내가 가진 돈을 합쳐봐야 고작 왕복 버스요금 정도였다. 가격 절충이 안되자 엄마의 얼굴이 점점 사색이 되어갔다. 그때 택시 한 대가 들어왔다. 손님이 내리고 있었다. 엄마는 재빨리 방금 도착한 택시로 달려갔다. 그리고 기사 쪽 창문에 대고 뭐라고 말하더니 나보고 타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얼른 택시로 가서 뒷문을 열고 앉았다. 엄마도 뒤따라 들어왔다.
내가 기억하는 건 택시가 엄청 빠르게 달렸다는 것, 주위 풍경이고 뭐고 볼 여유도 없이 그저 앞만 보았다. 엄마도 나도 기사도 말이 없었다. 다행히 면접장에는 30분 전에 도착했다. 화장실에서 검은색 재킷과 치마로 갈아 입고 구두도 바꿔신었다. 엄마는 면접장 밖에서 기다렸고 나는 대회의실이라고 이름이 붙은 곳으로 갔다.
나는 엄마가 택시비를 잘 절충했으리라 생각했다. 마음씨 좋은 기사 아저씨를 만나 아주 싼 값에 도청까지 다녀온 줄 알았으니까. 엄마도 그 이후 이야기가 없어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얼마 전 가족들끼리 밥을 먹다가 반지 얘기가 나왔다. 이제 팔십을 바라보는 엄마가 쪼글쪼글한 손등을 문지르며 반지를 끼어도 태가 나니 않는다고 했다. 그러니까 반지라도 끼워야 노화의 흔적을 감추는 거 아니냐며 딸들이 성화를 부렸다. 엄마는 나를 쳐다보며
" 너 면접날 택시기사한테 돈 대신 맡겼었지. 금반지니까 받아주더라. 나중에 돈을 구해 반지를 되찾아 오긴 했는데 그다음부터는 끼고 싶지 않더라. 안 끼니까 편하더먼"
"세상에나, 반지를 맡겼었다고. 나한테는 왜 얘기 안 했나?"
엄마는 해맑게 웃으며 "뭐 좋은 거라고. 말할 필요도 없었지 뭐" 했다.
그 반지 덕에 나는 30년째 철밥통이라고 부르는 공무원을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