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을 담당하는 직원이 문 앞에서 줄을 세웠다. 남자와 여자를 따로 세웠다. 남자는 꽤 많은 인원이었는데 여자는 나를 포함해서 열 명 안쪽이었다. 분군(分郡: 군지역으로 분리) 분시(分市: 시 지역으로 분리)의 여파로 각 자치단체별로 인력수급 각축전이 벌어졌다. 한 해 두 번의 채용공고가 있었고 정시는 2월에 치러져 8월에 발령을 냈다. 나는 후기 시험인 셈이었다. 차례를 기다리며 귀동냥으로 들은 내용을 꿰맞춰보면 이런 얘기였다.
원래 공무원 채용은 남녀 비율을 달리 한다는 것, 이번에는 남자 스무 명, 여자는 시군당 한 명인데 아예 뽑지 않는 곳도 있다고 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이었다. 느긋하던 마음에 동요가 일었다. 필기시험만 통과되면 면접은 그저 요식행위인 줄 알았다. 교생실습으로 면접 준비도 제대로 못했고 지금처럼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여기까지 온 나의 무모함에 정신이 아찔했다.
그 사이 내 바로 앞에 있던 여자의 이름이 불렸다. 들어간 지 15분이나 지났을까? 문을 열고 나오는 그녀의 얼굴이 새빨개져 있다. 자세히 보니 눈가에는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혔다. 대체 뭘 물어보길래?.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다음 순서는 남자였다. 교대로 면접을 봤고 나는 그 다음번이었다. 면접을 마치고 나오는 남자는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내 이름이 불렸고 나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세 명의 면접관이 일렬로 앉아 있었다. 세 사람 모두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남자였다. 질문은 두서없이 이어졌고 어렵지 않은 내용이었다. 거의 끝났다 싶을 무렵 가운데 앉아 있는 면접관이 물었다.
"삼종지도(三從之道)가 뭔지 말해 보세요. “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 했다. 하지만 이미 들어본 말이어서 생각을 정리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여자가 살아가면서 따라야 할 법도라는 거다.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르고 결혼해서는 남편을, 나이 들어서는 아들을 따라야 한다는 정말 케케묵은 조선시대 가르침이었다. 고등학교 국사나 아니면 한문 시간에 배운 것 같았다.
답변이 부족했는지 아니면 기대보다 괜찮았는지 면접관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질문 하나를 또 던졌다.
“그럼 칠거지악(七去之惡)도 알겠네요."
허걱, 이건 또 뭐야? 듣기는 했지만 중요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거였다. 삼종지도는 뭐 현모양처를 꿈꾸는 친구들도 많았고 그다지 거부감은 없었다. 그런데 ‘칠거지악’은 말이 달랐다. 아내를 내쫓는 이유가 되는 일곱 가지라니. 얼굴이 새빨개져서 나온 그녀가 생각났다. 머릿속으로 뭐가 죄가 될지를 생각해봤다. 그때 예전에 TV에서 본 사극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양반집 아녀자가 아이를 낳지 못해 문 밖으로 내쫓김을 당하는 장면이었다. 나는 간신히 “아이를 낳지 못하는 거요.”라고 말했다.
면접관은 그것도 모르냐는 눈초리로 나를 한번 쏘아보더니 “아이가 아니라 아들이지.”했다.
그리고는 됐으니 가보라고 했다. 내 얼굴도 홍당무가 되어 있을 게 뻔했다.
마지막 질문에 시원하게 대답을 못해 께름칙했지만 열흘 후 합격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전에 비슷한 또래의 여자 공무원들 모임에서 서로의 면접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때가 그랬나 보다. 지역도 다르고 면접관도 달랐을 텐데 거의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누군가는 후배들을 위해 예상 질문으로 알려주기까지 했다고 했다.
지금도 칠거지악의 전체 내용을 모른다. 굳이 알 필요도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다. 시대가 달라져 더 이상 저런 무엇 같은 질문을 하지도 받지도 않게 된 것이 천만다행이다. 그리고 지금은 더 이상 남자와 여자를 구분해서 뽑지도 않고 ‘제대군인 가산점 제도’도 적용하지 않는다. 군 가산점은 2년 이상 복무한 경우 필기시험의 각 과목별 득점에 각 과목별 만점의 5퍼센트, 2년 미만은 3퍼센트를 부여해주는 제도였다. 여성보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이었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을 고스란히 적용받았지만 우리 지역의 구분모집 마지막 주자였다. 다음 해 들어온 여자 후배들은 그런 제한이 없었다. 물론 지역에 따라 적용 여부가 달랐지만 1999년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면서 공식적으로 고용차별에 대한 폐단이 줄어들었다. 요즘은 오히려 여성의 채용비율이 높기도 하지만 상위직은 아직도 여성비율이 낮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제도와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