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음 날도 일찍 오지 않는 팀원들. 사무실에 들어가면 팀장 두어 명, 그리고 내가 세 번째 또는 네 번째였다. 수없이 변화하는 직장문화에 적응해야 한다고 되뇌었지만 이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짙어졌다.
최소 하루 8시간을 한 공간에서 보내는데 아침에 한 번쯤은 눈이라도 마주쳐야 하지 않나? 서로 얼굴 한번 똑바로 쳐다보지 않는 분위기. 누가 오는지 가는지조차 알 수 없는 이 썰렁한 고요가 일을 더 잘하게 한다고? 물론 이런 생각조차도 꼰대스러움이라는 것쯤은 안다. 그럼에도 나는 포기가 잘 안 되었다. 호시탐탐 예전의 부서장 중심의 명랑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 출근을 늦춰보기도 하고 일찍 오기도 했다.
일찍 출근한 날은 굉장히 분주했다. 특히 직원들이 줄줄이 들어오는 9시 1분 전 내 모습은 흡사 ‘두더지 잡기’에서 시도 때도 없이 튀어 오르는 두더지 같았다. 누가 오면 고개 들어 인사하고 숙였다가 또 누가 오는 듯하면 고개를 들었다. 자발적으로 시작했지만 못 할 짓이었다. 일주일 정도 하다 지레 지쳐 그만두었다. 인사를 하는 사람은 하는 대로, 조용히 들어와 앉는 사람은 그런대로 인정했다. 하지만 늘 뭔가 허전했다.
업무는 관련 지침도 있고 예전 자료도 많아 익히는데 어렵지 않았지만 직원들과 나 사이에 놓인 벽은 너무 높고 두꺼웠다. 질문을 하면 단답형의 짧은 문장만 돌아왔고, 푹 꺼진 분위기를 좀 띄우려고 시시껄렁한 농담을 던지면 마지못한 리액션이 영혼 없이 도착했다.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이런 어색한 분위기는 빨리 바꿔야 한다는 쪽과 반대로, 어차피 1년이면 다른 데로 갈 수 있으니 가만히 있으라는 쪽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후자의 현실 안주가 유력해지면서 은연중에 모든 걸 내려놓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중요한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는 실수를 했다. 대신 주무팀장이 다녀오기는 했지만 갑작스럽게 준비 없이 참석해서 상당히 힘들었던 모양이다. 너무 미안했다. 내가 할 일을 마땅히 하지 않아 누군가를 곤란한 지경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사건은 이랬다. 그 중요한 회의는 월요일 아침 8시 30분에 시작됐다. 지난주 금요일, 나는 가족들과 여행을 가느라 연차를 냈다. 서무 주무관으로부터 월요일 회의 참석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휴가에 푹 빠져있어 깜빡 잊은 것이다. 한번 더 일정을 체크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주무팀장도 있고 실무자도 있는데 간단하게 개인톡으로 일정을 알려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아쉬움도 있었다. 그리 큰 사건은 아니지만 이 일은 ‘내가 부서장으로서 잘하고 있는가?’라는 질문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