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장이 되기 전, 리더십에 관한 많은 책과 강연을 들었다. 수천 명의 직원을 고용하면서도 세계 최고의 기업을 운영하는 기업가로부터 유명 정치인,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 등 많은 사람을 책과 유튜브 등으로 소개받았다. 그들이 했다는 방법은 머릿속에 꽤 많이 차 있었다. 최근 트렌드인 부드러운 카리스마, 여성 관리자를 위한 핑크 리더십, 자기 계발 분야의 고전인 카네기 인간관계론까지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한 수많은 에피소드를 읽었다. 덕분에 우리 일상에 가장 필요한 것이 ‘인간관계’이고, 인간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 소통에 문제가 없어야 된다는 것을 배웠다.
‘소통’, 조직문화 개선에 가장 많이 떠오르는 화두다. 조직뿐이겠는가,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소통은 삶의 문제와 직결된다. 인사혁신처에서 발간한 『나는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인가』에서 소통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으로 ‘경청’을 꼽았다. 경청은 단순히 말의 내용만 듣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이의 감정과 정서까지 이해할 수 있도록 귀담아듣는 것이다. 경청을 하려면 직원들에게 한 발 더 다가가야 했다. 대충 1년만 버티고 다른 곳으로 가면 된다고 했던 나 자신이 경청을 외면하고 있었다. 얼마나 무책임하고 바보 같았는지 일이 터지고서야 생각났다.
보름 정도 지나고 팀장들과 식사를 했다. 그리고 넌지시 부서 분위기를 좀 바꿔봤으면 좋겠다고 운을 띄웠다. 팀장들은 정말 모두 좋은 분들이었다. 한 사람도 모난 성격도 없었다. 한때 뾰족했던 분들도 이제 세월과 함께 둥글어져서 마치 예전의 그분이 아닌 것 같은 분도 있었다. 다만 소수 직렬로서 느끼는 애환들이 있었다. 특수 직렬임에도 출중한 업무 능력이면 곧 승진이 될 것 같았지만 공무원 사회가 그렇게 유연하지 않다. 조직원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다수 직렬의 불만을 잠재우기보다 소수의 불만을 무시하는 것이 손실이 적기 때문이다. 이제는 거의 초월한 듯 자신들의 페이스로 업무와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의기소침해진 채 세월을 낚는 어부가 되고, 누군가는 직장에서의 야망은 접고 자기 본연의 인생에 충실하기 위해 여행을 선택한 이도 있고, 누군가는 퇴직 후 새로운 인생을 위해 자격증에 사활을 걸었다. 그들을 보면서 진한 연민도 있지만 감정 한 귀퉁이에는 답답함도 있었다. 그 답답함은 그들이 소심하고 적극적이지 않아서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답답한 것은 그들이 아니라 ‘나’였다. 다수 직렬에 속한 나는 결코 그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었던 거다. 그럼에도 팀장들은 소신껏 자기의 직렬이 해야 할 직분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팀장들은 부서장으로서 직원들과 좀 더 소통하고 싶다는 나의 뜻을 존중해 주었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다 하라고. 자기들도 적극 도와주겠 노라고 했다. 마치 철부지 어린아이가 돈 없는 부모한테 비싼 장난감을 사달라고 할 때 그저 허허 웃어주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