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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행시 Oct 02. 2024

47% I, 53% E

외향이지만 내향으로 살기

 MBTI를 알게 된 것은 십여 년 전 한 역량강화 프로그램에서였다. 총 40명을 5개의 그룹으로 만들어 8명씩 둘러앉게 하고 감사를 했다.


 그때는 INFJ(일명, 인프제)로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 INFJ가 가진 최고의 장점은 공감능력이 좋아 타인의 감정을 잘 읽는다고 한다. 경청의 달인이라 ‘선의의 옹호자’라고 불린다. 여기까지는 너무 좋았다. 그런데 단점이 있었다. 생각이 많아 현실과 타협이 잘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 문구를 몇 번이고 곱씹었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평소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내가 모범생인 것 같으면서 삐딱한 면이 있고, 착한 듯 하지만 상당히 이기적이고, 그럼에도 자기 계발에 대한 욕구가 너무 많다고 했다.

 장점만 가져오면 좋았을 텐데 이 유형 중 단점이 나에게 더 많이 달라붙어 있었다. 그렇다고 바꿀 수는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바꿔지지 않았다. 인간은 불완전하다고 이미 철학자나 종교인들이 말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언제부터인가 아주 미세하지만 변하려는 시도를 해봤다. 혼자 사는 게 아니니 좀 덜 심각해지고 현실과 가끔은 타협할 줄 아는 융통성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남은 공직생활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긍정이 필요한 때였다.


 그 후로 오 년도 훨씬 지난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으로 MBTI검사했다. 앞의 문자가 ‘E’로 바뀌어져 있었다. 그렇다고 지 ENFJ(정의로운 사회운동가)가 완벽하게 맞느냐, 그것도 아니다. 장점도 많은 유형이지만 은근히 독선적인 면이 있어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는 듯한 행동과 말을 한다고 해서 나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딸아이가 내가 가끔 이럴 때가 있다고 했다. 나도 모르는 나의 모습을 딸애를 통해 알게 되면서 살아온 날들을 짚어보았다. 열등감이 고조될수록 타인을 향한 맹수 같은 비난을 쏟아냈던 과거, 나의 입지가 불안할수록 주변에 대한 불만만 확장시켰다. 독선적이면서도 소심하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풀리지 않았던 여러 정황들. 결국은 삶을 이해하는 방식에 많은 편견과 오만이 있었음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렇다고 인간성이 하루아침에 훌륭해지지는 않는다. 나도 불완전한 존재였고 그저 한 사회의 일원으로 성실한 직장인이었다. MBTI의 분석결과 열여섯 가지 중 어떤 것은 좋고 어떤 것은 나쁘다고 할 수 없다. 다만 무엇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 ‘자기 자신’과 마주했을 때 MBTI는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데 약간의 도움은 되었다.


요즘은 성향별로 비율까지 표시되었다. ‘E’ 53퍼센트, ‘I’ 47퍼센트. 외향형이지만 소심한 외향형이다. 보통 ‘E’는 외부에서 에너지를 얻는 형이라 외부 활동이 많고 거기서 생동감을 얻는다고 하는데 나는 좀 다른 편인 거다. 오히려 많은 사람을 만난 날은 더욱 지치고 피곤하다. 다만 만난 사람들과 교감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자리라면 거기서 뭔가 내적 동기를 일으키는 요소를 찾아내는 때가 있다. 그래서 싫지만 외부활동에 참여하는데 그럴 때는 활발한 ‘E’의 기제가 발휘되기도 한다. 다만 47퍼센트를 통해 혼자 있을 때 에너지가 응집되는 ‘I’가 내게 있음을 기억하는 게 중요했다.  직원들과 본격적인 면담을 하기 전에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고 도서관에서 MBTI 관한 책을 빌렸다. 어느 정도 짐작은 되지만 실질적인 성격유형이 궁금했다.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상대가 어떤 유형을 가지고 있는지 정도를 파악해야 자연스러운 대화가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며칠 시간을 두고 내 생각을 알렸다. 아침 티타임이나 점심시간, 출장 중일 때 동승한 직원들에게 MBTI를 해보았는지. 또는 관심이 없는 직원에게는 좋은 점을 구구절절이 늘어놓았다. 다른 점은 몰라도 ENFJ 중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주입시키려는 성향은 완벽하게 나와 맞다.


 그리고 어느 날 전 직원 MBTI 검사를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나와 연배가 비슷한 팀장들은 어색한데 뭘 그렇게까지 하냐는 반응이었지만 몇몇 직원들은 흥미를 갖고 있었다. 소수였지만 힘이 생겼다. 며칠 후 조심스럽게 부서장으로서 연말까지 수행해야 할 미션 세 가지를 단톡방에 공지했다. 그 세 가지는 마니토 게임, MBTI 검사와 개별 면담, 부서 화합대회였다. 정말 하기 싫은 사람은 개인톡으로 의견을 달라는 추신까지 덧붙였지만 없었다. 아무리 부서장이 먹던 떡같이 보일지라도 모래를 끼얹는 사람은 없다. 공무원은 분위기상 선량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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