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안다. ‘마니또 게임’이 초등학생들이나 하는 유치한 장난이라는 것을. 하지만 사람이 즐거움을 느낄 때는 어릴 때 하는 놀이를 하거나 게임을 즐길 때라고 하지 않는가.
‘마니또’는 ‘비밀친구’로 알고 있는데 원래는 ‘Manito’라는 스페인어로 ‘도와주다’에서 왔다고 한다. 게임 전 규칙을 정했다. 하기 싫어서 그런지 의견을 주는 이들도 없어서 간단히 만들었다. 먼저 부서원의 이름을 종이에 한 장씩 쓰고, 잘 접어 한 장씩 고르게 했다. 물론 램덤이기에 자기가 자기를 선택할 수도 있다. 우리 부서는 나를 제외하면 22명이라 인원수도 잘 맞았다. 운영기간은 30일, 그 기간에 세 가지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마니또에게 1만원 이하에 해당하는 선물을 하거나 자연스럽게 점심이나 커피 사주기. 마니또의 이름으로 삼행시 짓기 그리고 마니또를 들키면 벌금 1만원 내기였다. 마니또를 정하기 위해 회의용 탁자에 모여섰다. 각자 이름을 쓰고 그 아래 규칙까지 적은 네임카드를 쭉 펼쳤다. 간단히 취지를 설명하고 동시에 카드를 선택하라고 했다. 아주 잠깐 눈치를 보다가 슬금슬금 카드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가도록 했다. 들키면 벌금이 따라 붙기에 서로 경계하는 듯했다.
조용한 긴장감이 사무실에 흘렀다. 아주 가벼운 친절에도 ‘혹시 제 마니또세요?’라는 공연한 의심이 싹텄고 누군가의 책상 위에 가지런히 올려져 있는 작은 선물에 대한 관심을 공유했다. 우리는 공공연하게 누가 누구의 마니또 같다는 추측을 했고 서로가 받은 소소한 선물도 구경했다.
약속된 30일이 지나고 우리는 점심 겸 회식을 했다. 자기의 마니또를 밝히는 자리였다. 먼저 얼마나 비밀을 지켰는지 알아봤다. 놀라운 일이었다. 얼마나 철저하게 위장했는지 한 사람도 마니또를 맞추지 못했다. 덕분에 기대했던 벌금 수입은 없었다. 신기한 사람들이다.
제공한 선물을 받고 성별을 구분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여 선물을 구입한 경우도 있었다. 누군가는 마니또가 지어 준 삼행시가 너무 맘에 들어 카톡 프로필에 올렸다는 사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한 사무실에 그리 오래 같이 있었지만 통기타 연주가 취미라는 걸 몰랐다는 두 친구, 그들은 조만간 음악 동아리에도 합류할 것이라고 해서 밥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예상외 였다. 그냥 나의 주변에 누가 있는지를 알아보게 하는 거였다. 대단한 선물은 아니지만 어느 한 순간은 자기 아닌 타인을 향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하고 싶었다. 너무 유치하고 발칙한 게임이지만 성심껏 참여한 직원들이 고마웠다.
물론 마음은 있지만 도저히 따를 수 없었던 이들도 있었음을 왜 모르겠는가. 그래도 고마울 수 밖에 없었다. 무모할 수도 있는 내계획을 사내 게시판에 불만 섞인 푸념을 올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반은 성공한 셈이니 말이다. 지났으니까 하는 말이지 마니또가 진행되는 30일 동안 출근과 동시에 새올 게시판을 제일 먼저 살폈다. 쫄보임에 틀임없으니까. 어른들의 마니또를 무사히 끝내고 며칠 후 팀장 한 분이 내게 물었다. 다른 부서에 가서도 또 하겠느냐고. ‘또 해야죠.’ 하고 얼른 대답하려다 잠시 멈칫했다. 다음에는 분위기상 더 어려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나는 ‘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