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또 게임을 끝내고 한 달 뒤 MBTI 유형분석과 면담을 진행했다. 규정에 따라 매년 2회, 6월과 12월에 평가를 한다. 그럴려면 3월 전에 직무와 관련한 면담을 진행하고 분기별로 성과면담을 해야 한다. 그리고 6월분 평가 점수를 입력한다. 이때 직급별, 직렬별 순위가 매겨지는데 이 과정을 일 년에 두 번 한다고 보면 된다.
우리 기관은 업무성과 50점, 직무수행능력 40점 그리고 직무태도 10점, 총100점 만점이지만 근무중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면 감점을 주게 되어 있다. 평가전에 해야하는 면담은 직무와 관련한 사전 협의와 비슷하다. 업무에 대한 난이도와 추진방향을 공유하는 차원인데 대부분 건너뛴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평정지침이 있지만 결과는 너무 뻔하다.
대부분 경력(현직급 승진연도)으로 순위가 정해진다. 원칙은 성과가 우수한 직원을 앞 순위에 놓게 되어 있지만 말처럼 어렵다. 예를 들어 같은 6급이어도 승진년도가 차이가 난다. 적게는 6개월 많게는 3, 4년인데 아무리 성과가 좋다고 4년이나 승진이 늦은 사람을 1순위에 놓을 수 있는 부서장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공무원은 하루라도 빨리 들어오는 게 낫다는 말을 한다.
그런 것은 차차하기로 하고 나는 직원들의 성향과 각 팀의 분위기를 알고 싶었다. 업무를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는지, 혹시 주변 동료들과 마음 상하는 일은 없었는지 그런 지극히 사소하지만 어쩌면 가장 중요할 것 같은 이야기들을 듣고 싶었다. 시간이 그렇게 넉넉하지 않았다. 개인별 성과계획서 승인 후 2주일 안에 면담을 마쳐야 했다. 하루에 삼, 사명씩 면담했다.
사실 내 입장에서도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일개 부서장일 뿐 전문상담가는 아니기에 어떤 상황이 나올지 전혀 가늠되지 않았다. 그나마 기댈 수 있는 것이 MBTI 였다. 한때 한국인들이 MBTI를 너무 맹신한다고 멕시코 사람들이 비난도 했다는데 아직도 많은 기업이나 기관 워크숍에서 이용하고 있다. 진단은 어렵지 않다. 워낙 대중적이라 인터넷에서도 쉽게 검사할 수 있다. 나는 직접 면담지를 만들어 사내 메신저로 보냈다. 물론 단체톡에서 미리 이야기를 했고, 보내는 자료에는 ‘나’를 예시로 견본까지 첨부했다. 먼저 나를 공개해야 상대도 조금은 마음을 열어 줄거라 기대했다.
면담을 하겠다고 했지만 제일 불안한 것은 나였다. 어쩌면 면담순서가 되어 찾아온 직원들이 자기들보다 더 경직된 나를 알아챘을 것이다. 다만 직접적으로 말해 준 이가 없다는 것 뿐. 면담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장소는 사무실 밖 복도 끝에 테이블과 의자 2개를 갖다 놓고 시작했다. 취향껏 차를 가져온 사람도 있고 그냥 앉아 내 말만 듣고 간 이들도 있다. 주로 젊은 층들이 말이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들은 말이 없는 게 아니라 나와 할 말이 없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