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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행시 Oct 02. 2024

'I'밭의 파수꾼

기대 이상의 희망

 정말 신기한 것은 22명 중 ‘E’는 단 한 명이었다. 사무실이 유난히 조용할 수 있었던 것은 온통 ‘I 텃밭’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I’ 중에서도 외향성이 많은 유형도 있었지만 이곳은 드물었다. 게다가 그 희귀한 ‘E’는 업무 특성상 별도 외부 건물에서 근무하고 있어 안쪽 사무실에는 시끌벅적한 기분파가 없었다.


2023년 한국인의 MBTI 유형 분포도를 보면 ISTJ(청렴결백한 논리주의자)가 제일 많다고 한다. 그 다음이 ESTJ(경영자), ENFP(활동가), ISFJ(수호자) 등인데 우리도 비슷했다. ISTJ, ISFJ, INFP(중재자)가 대부분이었다. ISTJ는 ‘청렴결백한 논리주의자’라고 한다. 면담을 해보니 이 유형의 사람들은 정말 반듯했다. 초과근무 인정시간이 70시간이라 해도 자신이 한 만큼만 받겠다는 정직과 소신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그만큼 강직하면서도 현실적 이라 인터넷 게시글에서도 ‘가장 사기를 안 당할 것 같은 MBTI 순위 1위’ 또는 장기 근속에 적합하기에 공무원에게 어울리는 유형이라고도 소해됐다. 다만 융통성이 부족하 다는 말을 들을 수 있지만 이것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 않나 싶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명분은 상담이지만 사실 간단한 대화 수준이었다. 이미 상급자와 하급자라는 불편한 관계로 시작한 것이고 여러 가지 조건이 평등하지 않기에 진솔한 이야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궁극적인 목적, 공무원이기에 요구되는 행정서비스는 공통의 관심사였고, 이 부분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기위해 서로를 살피는 것은 당연했다. 왜냐하면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힌 업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국 사람 사이의 미묘하고 자잘한 감정선들이 그 안에 빼곡히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무실에 그 다음 많은 유형이 ISFJ였다. ‘용감한 수호자’로 불리는 이 유형은 조화와 안정을 좋아해서 타인을 잘 배려한다고 한다. ISTJ와 알파벳 하나 차이인데 많이 달랐다. 그리고 이 두 유형은 서로 보완관계에 있어 서로 신뢰를 쌓기 때문에 조직 내에서 조용하고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어쩌면 이 둘의 조화가 우유부단하면서 조금은 산만한 ENFJ(사회운동가) 부서장을 받아줬는지 모르겠다.


 여튼 나는 2주에 걸쳐 팀장급 - 연배가 비슷하다 보니 조심스러워서 –을 제외하고 모든 면담을 마쳤다. 제대로 된 상담은 아니었지만 늘 집 밖에 서성이다 비로소 집 안으로 한 발짝 들어온 것 같았다.


  리더로서 조직을 잘 관리하려면 우선 세 가지를 통합해야 한다고 한다. 정서적 통합, 조직의 가치, 업무의 목표. 이중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업무에 대한 공통된 합의다. 우리는 같은 직장이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와 있고 해야 할 일들이 어떤 성과가 필요한지 알아야 한다. 그 다음은 가치를 공유해야 한다. 달성할 목표를 위해 어떤 방식을 취해야 하는지 가치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마지막이 정서적인 통합이다. 언뜻 보면 정서적 통합을 가장 먼저 해야 할 것 같지만 접근이 쉽지 않다. 조직 가치와 업무목표를 가지고 접근한 후에 개인의 성향과 업무스타일을 접목시킬 수 있는 정서적 통합이 투입되어야 한다.


나는 정서적 통합을 위해 MBTI 라는 도구를 써서 면담을 시도했다. 그렇다고 무슨 효과가 있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처럼 그들을 알 수는 없었다. 기껏 알아낸 것은 I(내향성)라고 해도 누군가는 명랑했고, 누군가는 정말 말 그대로  ‘I’ 라는 정도. 그래도 면담하기 전과 면담후는 사뭇 달랐다. 철학자 비스켄슈타인은 ‘어떤 돌을 옮기려고 할 때 도저히 손을 댈 수가 없다면 주변의 돌부터 움직여라.’라고 했다. 무슨 일을 할 때 수많은 장애물이 있다는 먼저 주변의 것부터 움직여야 한다는 거다. 직원들과 나 사이에 놓인 장벽을 넘어뜨릴 수는 없지만 서로 얼굴은 볼 수 있는 구멍 정도는 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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