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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행시 Oct 02. 2024

서로 알지 못하는 일상

엮이고 엮이면서도 외면하는 삶

 스물 두명의 직원들은 언뜻 보면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매우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젊은이와 중년, 남성과 여성, 때로는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너무도 다른 생각과 고민이 따라 다녔다.


 보기에 그저 안정되고 평화롭게 보인 젊은이는 이직을 고려할 만큼 공무원 조직에 큰 실망을 갖고 있었고. 부모 돌봄에 지친 싱글 남성은 조기 퇴직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가족간의 갈등으로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할 사연들로 아픈 시기였다. 그렇게 자기 문제의 심각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업무 추진에서 발생하는 작은 트러블에도 발끈했고, 또 누군가는 타인에게 조금이라도 자기 에너지를 나눠주지 않으려는 이기적이고 무관심한 태도가 보였다. 물론 성격유형도 조금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다.


 나는 그저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문제에 대해 내가 마치 하느님이라고 되는 것처럼 이래라 저래라고 할 수 없었고 누군가를 통제할 만큼 높은 인격을 갖추지 못했다. 그렇지만 면담을 하면서 우리 부서 사람들이 얼마나 친절하고 부드러운지 알게 되었다. 언뜻 보면 무관심한 것 같지만 그 마저도 상대를 배려하는 깊은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다.


 면담에서 알게 된 또 한가지는 지난번 회의 불참사건 실체였다. 실무자는 나에게 문자라도 보내겠다고 했지만 주무팀장은 휴가중인데 신경 쓰이게 하지 말자고, 부서장인 내가 잘 알아서 할 거라고 했다는 거다. 듣고 보니 나를 너무 높이 평가해서 그런 거였다.

나는 모임 정산을 알리는 글을 읽고 거기 적힌 79,000원을 입금했다. 나중에 총무에게 왜 돈을 보냈냐는 말을 듣고서 다시 읽어보니 더 내는 것이 아니라 1인당 돌려준다는 금액이었다. 총무는 열 다섯명중 유일하게 나만 입금했다고 했다. 그 정도로 나는 덤벙대고 허술했다. 무엇이든 대충 둘러보는 변변치 못한 면이 있음을 진작에 고백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순전히 내 탓인 걸, 괜스레 그들 탓만 한거다.

 

나는 서무업무 담당자를 불러 일정관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주무관은 나에게 스마트폰에 있는 일정관리 앱을 제안했다. 이 간편하면서도 똑똑한 앱은 부서의 공식 일정과 내 개인사까지 담을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동선과 업무를 공유하면서 중복되는 미팅은 취소하는 등 자잘한 것들을 관리했다. 문제는 늘 있기 마련이고 또 누군가는 꼭 해결책을 가지고 있다.


초반에 엄청난 부담이었던 면담이 뒤로 갈수록 수월했다. MBTI 분석을 통해 신기한 듯 자신을 들여다 봤다는 나이배기 고참도 있고, 자신의 성격유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신규 직원도 있었지만 대체로 만족스러워 했다. 만약 다음에 또 다시 도전해 본다면 두 가지 정도는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첫번째는 면담순서를 잘 정해야 한다. 평소 잘 알고 있었던 직원부터 시작해서 면담에서 자연 스럽게 대화하는 법을 익히고, 이 면담에서 나와 그 사람의 관계가 어떠하면 좋을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이후에 만나게 되는 약간 서먹한 사이에서도 부드럽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두번째는 별도의 면담지가 필요 하다. 규정에 있는 근무평정서식은 업무만을 가지고 평가하도록 되어 있어 그 사람의 스토리를 알 수가 없다.


별도의 면담지에는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날, ’가장 슬펐던 기억’, ‘공무원을 하게 된 동기’,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넣었다. 물론 작성은 강제가 아니었다. 평소 자기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한 사람은 페이지를 채웠고, 절반정도는 질문마다 한 줄이나 두 줄 정도로 문장을 썼다. 그리고 한 두명 정도는 크게 생각나는 일이 없다는 이유로 빈 칸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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